4강. 1976년 1월 28일 강의
85-1. 문제의식(최종주장) : 인종주의담론은 인종전쟁담론의 한 국면이며, 기본적으로는 보수주의적이거나 식민지배의 목적에 사용되는 사회-생물학 이론이다. 인종주의 담론은 반역사로서의 인종투쟁이나 인종전쟁의 담론의 변형이지만 그것과 엄밀히 구분되어야 한다.
86-1. 권력정당화로서의 역사담론 : 역사담론은 오랫동안 권력을 정당화하고 그것을 빛나게 하는 이중의 역할을 하는 권력의 의식(儀式)이었다. 첫째, 법의 멍에. 왕과 권력자의 승리를 말하면서 법의 영속성에 따라 권력과 사람을 법률에 연결시키고, 권력의 기능 안에 사람을 배치시키는 것. 둘째, 영광의 광채. 권력자의 영광과 위업을 찬양하여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것. 각종 의례와 전설로서의 역사는 권력을 조작․강화하는 장치이다.
86-2. 중세 역사담론(설화)의 3가지 계보학적 기능 : (1) 왕권의 유구함, 영웅(선조)의 위엄을 말하기. (2) (군주적) 권리의 유구함을 말하기. (3) 왕․군주 등의 이름을 과대평가하기.
87-1. 중세 역사기록(연대기)의 3가지 기억의 기능 : (1) 왕의 행위를 의미있는 것으로 기록하기. (2) 왕의 결정을 신민들과 후손들에게 의무로서 기입하기. (3) 실례의 유포.
88-1. 주권을 강화시키는 역사의 기능 : 로마나 중세사회(인도-유러피언 사회)의 역사형태들에는 앞서 얘기한 두 가지 기능, 법(의무, 계약)에 의한 속박과, 마법적 기능에 의한 현혹이 동시에 나타났다. 즉 권력담론으로서의 역사는 사람들을 굴복시킬 때 사용하는 도구인 의무의 담론이자,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공포로 얼어붙게 하는 눈부신 섬광의 담론이다. 이것은 당시의 권력의 표상이자 권력을 재활성화시키는 과정 그 자체였다.
88-2. 새로운 역사담론의 출현 : 그러나 16-17c초에 주권․인종의 담론과는 다른, 인종들 간의 대결과 투쟁의 담론, 반로마적, 반역사적 담론이 나타났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반역사적이다. 이때부터 국가와 군주, 민중과 왕 간의 동일성이 사라졌으며, 그로써 주권은 인종의 결속이 아니라 예속의 기능을 갖기 시작했다. 예컨대 프랑크족과 클로비스 1세에겐 승리였던 역사가 갈로 로맹(골족)인들에게는 패배와 노예의 역사였다. 승리와 예속의 현실법칙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러한 반역사는 군주 통치의 통일성을 해체할 뿐만 아니라 윤영광의 지속성까지도 단절시켰다. 권력의 마법적 빛은 더 이상 사회를 하나로 비춰주지 않으며, 양지와 응지를 나누는 빛으로 변모했다. 인종들의 투쟁으로부터 생겨난 반역사는 이 응달에 관한 담론이다. 이 담론은 잃어버린 영광과 옛권리를 회복시켜줄 약속된 땅을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이 견뎌내야만 했던 굴종과 패배를 열거한다.
92-1. 담론 전환의 내용 : 로마의 정치-전설적 역사에서 유대인들의 신화-종교적 역사로, 즉 권력의 연속된 역사를 기록한 연대기의 형식에서 히브리 성서적 형식으로. 이러한 변환 속에서, 성서는 중세 중반기 이후부터 왕권 및 교회의 전횡에 맞서 표출된 반대이론으로, 비판담론으로 기능했다. 성서는 빈곤과 부활의 무기였고, 법과 빛에 대항하는 여론을 일으키는 말이었으며, 로마사(리비우스)에 대항한 반역사였다.
92-2. 기억의 의미전환 : 이 새로운 담론 속에서 기억의 기능 역시 의미가 바뀐다. 새 역사는 이제까지 숨겨져있던 것, 단순히 부주의로 숨겨진 것이 아니라 고의적으로 은폐된 어떤 것을 발굴한다. 결국 새 역사가 보여주려는 것은 권력자와 왕, 그리고 법칙(법?)이 실은 전투장의 정의롭지 못한 우연 속에서 탄생했음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잉글랜드의 정복자 기욤은 정복자로 불리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가 휘두른 전횡이 쟁취된 권리라는 것을 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역사의 역할은 법이 기만이라는 것, 권력은 환상을 심어주며 역사학자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게 된다.
93-1. 고대의 종말 : 로마적 역사담론은 사회를 평정하고 권력을 정당화하고, 사회체를 구성하는 질서(혹은 군주․귀족․평민 계급)를 기초한다. 반면 성서적 역사담론은 사회를 분열시키고, 법에 전쟁을 선포하기 위해서만 법을 말한다. 이 반역사는 어두운 예속과 추락의 역사, 예언과 약속의 역사, 재발견하고 판독해야할 비밀스런 앎의 역사, 그리고 권리와 전쟁을 동시에 선언한다. 자연적인 사물의 질서로의 강력한 회귀를 주장하는 앎과 호소의 담론이며, 더 이상 인도-유러피언 사회의 역사담론처럼 삼원적인 조직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원적 분할 및 지각과 관계가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 종족투쟁의 역사에 대한 담론이 생겨났을 때 고대(고대에서 중세 말까지의 지속성의 의식-프리아모스 왕가의 계통을 잇는다는 의식)는 끝났다. 그 뒤로 유럽의 진짜 기원(예컨대 프랑크족의 침입, 노르만족의 침입 등 정복으로부터의 기원)을 형성할 사건과 그 속에서의 역사적 주인공들(프랑크족-골족-켈트족, 북부인-남부인, 지배자와 피지배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97-2. 근대사회로의 진입 : 이러한 담론전환 속에서 다음 4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담론의 확산 : 종족투쟁의 담론이 반드시 피억압자나 민중의 담론인 것만은 아니다. 처음에는 이 담론이 중세 후기의 민중운동 속에서 신화나 종말론적 주제로 모습을 드러냈지만(17c), 곧 역사적 학문이나 민중문학, 우주-생물학적 사변의 형식으로 확산되었다(19c초). 그리고 이후 식민화된 저급인종의 자격박탈이론에 기여하기에 이른다(19c말-20c초). (2) 균열된 종족 : 종족간의 전쟁이라고 해서 그때의 ‘종족’이 어떤 안정된 생물학적 의미에 고정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매우 넓은, 그러나 상대적으로 고정된 역사적․정치적 균열을 가리킨다. 왜냐면 서로 다른 언어와 종교를 가진 두 종족이 전쟁과 폭력을 통해 수립된 유대관계로서 정치적 공동체를 이룬 것이기 때문이다. (3) 앎의 폭발 : 로마적 역사와 성서적 역사는 공식적 담론과 촌스런 담론(즉 앎을 생산할 능력이 없는 순진한 담론)의 차이로 봐서는 안 된다. 후자는 전자가 이룬 것만큼의 앎을 생산했기 때문이다. 17c에 역사적 인식형성이 폭발했던 것은 두 역사적 실천이 교차했을 때였다. 또한 19c에도 역사적 앎의 풍요기가 찾아왔었다. 민중의 역사, 골족과 프랑크족의 역사, 농민과 제3신분의 역사 등의 담론이 체제의 정통적 역사와 충돌하면서 앎의 영역과 내용이 끊임없이 부딪치고 새롭게 생산되었다. (4) 혁명적 담론 : 이 모든 충돌에도 불구하고 혁명적 담론이 자리잡은 것은 분명 성서적 역사, 투쟁과 요구로서의 역사, 은폐의 폭로로서의 역사, 전쟁의 도구이자 전술적 요소로서의 앎의 사용의 역사, 권력행사의 장에서 자리옮김을 시도한 역사의 쪽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종족간의 (대결의) 역사와 혁명적 기획의 역사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우리의 계급투쟁이론, 그것을 우리는 종족투쟁을 말하는 프랑스 역사가들에게서 발견했다는 것을 자네는 잘 알고 있겠지.”(맑스, ‘1882년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 또한 이것은 주권과 신화의 역사에서 벗어났음을, 즉 근대사회로 진입했음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101-1. 반혁명적 반역사 : 19c초․중반에 이처럼 종족투쟁담론이 혁명담론으로 해석된 순간부터, 즉 종족투쟁 개념이 계급투쟁 개념으로 전환된 순간부터 반역사를 계급투쟁이 아닌 종족투쟁(의학적, 생물학적 의미)의 용어로 새롭게 체계화하려는 시도는 매우 적절한 것(때를 잘 만난 것)이었다. 이렇게 혁명적 형태의 반역사가 형성된 순간, 또 다른 반역사가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혁명적 담론의 역사적 차원을 의학-생물학적 전망(그리고 인종차별주의) 안에서 말살하게 된다는 점에서의 반역사이다. 이제 역사적 전쟁이라는 주제는 생존경쟁이라는 후기 진화론적․생물학적 주제로 전환된다.(전쟁개념의 전투의 종의 분화․적자생존으로의, 생물학적 개념의 전투로의 전환) 즉 두 종족이 나란히 공생하는 이원적 사회의 주제가 생물학적으로 단일한 일원적 사회의 주제로 바뀌게 된 것이다. 정의롭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던 국가가 종족의 순수성과 우월성, 통합을 보장하는 도구로서의 국가로 전환되고, 그래서 종족의 순수성이라는 이념이 인종간 투쟁이라는 이념으로 대치된다.
102-1. 인종주의 및 의학과 주권 : 이 점에서 인종주의는 우연히 서구의 반혁명정책과 연결된 것이 아니며, 또한 단순히 특정 시기에, 일종의 반혁명적 기획 안에 나타나게 될 부가적 이념의 구조물이 아니다. 종족간 투쟁의 담론이 혁명담론으로 변화했을 때, 원래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으나 전혀 다른 의미로 전환된 인종주의는 이제 혁명적 예언과 기획․사상이 되었다. 이제 주권의 생명력과 섬광은 마술-사법적 儀式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의학-규격화의 기술에 의해 확보된다. 법률학에서 생물학으로, 복수의 종족에서 단수의 종족으로, 해방기획에서 순수의 기획으로 관심을 바꿔놓음으로써 국가주권은 종족투쟁의 담론을 다시 취해 그것을 자기 고유의 전략으로 삼은 것이다.
103-1. 나치와 소비에트의 변용 : 혁명담론의 인종주의로의 전환은 20c에 다시 두 번의 변화를 겪었다. 첫째, 19c말의 중앙집권적․생물학적 인종주의. 그리고 근본적으로 수정된 것은 아닌 둘째, 20c의 특정 전략으로의 변형. 그리고 이러한 20c의 변형에는 두 가지 변용형태가 있다. (1) 나치적 변용. 나치는 19c말에 확립된 국가인종주의의 명제를 채택했다. 이 명제는 약간 퇴행적인 방식으로 채택 및 전환되어 과거에 종족간 투쟁의 주제가 나타났던 바로 그 예언적 담론에 이식된 채 기능했다. 그래서 나치즘은 이데올로기적․신화적 풍경 안에서 국가인종주의를 작동시키기 위해 중세적 민중신화를 다시 사용했으며, 또한 한 사람의 영웅의 회귀, 조상들의 옛 전쟁의 계승, 묵시록적인 최후의 새로운 제국의 도래 등의 주제를 담고 있었다. (2) 소비에트식 변용. 이것은 떠들썩한 연극적 전설이 전혀 없는 음밀하면서 희미한 ‘과학주의’적인 변용이다. 이것은 사회적 투쟁이라는 혁명담론을 다시 가져와 경찰국가적 관리와 연결시켰다. 조용하게 사회의 질서를 잡고 사회의 건강을 지켜날 경찰국가적 관리의 적은 새로운 계급의 적, 즉 병자․일탈자․광인이다. 그 결과 과거 계급의 적에 대항하던 무기(전쟁, 변증법, 신념이라는 무기)는 이제 종족의 적으로서의 계급의 적을 말살하는 의학적 경찰이 되었다. 혁명담론은 국가의 행정적 산문으로 변모했다.
105-1. 반혁명이 가져온 풍경. 로마의 재정복 : 페트라르카는 중세의 끝트머리(1373년)에서 “역사 안에 로마 칭송이 아닌 것이 어디있는가?”라고 물었었다. 이것은 이제 “역사 안에 혁명의 공포 또는 호소 아닌 것이 무엇이 있는가?”라고 바뀌어 물어져야 하며, 여기에 “만일 새롭게 로마가 혁명을 정복한다면?”이라고 되물어져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