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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


「경험과 빈곤」(1933), 『발터벤야민 선집5』, 최성만 옮김, 길, 169~180쪽.

 - 172쪽. 1차 대전 이후 전달할 만한 경험은 거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전략적 경험이 진지전에 의해, 경제적 경험이 인플레이션에 의해, 육체적 경험이 배고픔에 의해, 윤리적 경험이 권력자들에 의해 철저하게 허위로 판명났기 때문이다.

- 173쪽. 기술의 발달과 함께 사람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빈곤이 덮쳤다. 점성술, 크리스천 사이언스, 채식주의, 그노시스, 심령주의 등 사람들 위로 덮친, 갖가지 이념들이 이러한 빈곤의 이면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겪는 경험의 빈곤은 거대한 빈곤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 그 거대한 빈곤은 중세 걸인의 얼굴처럼 날카롭고 정확한 윤곽을 띠는 얼굴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교양(문명)의 산물 전체는 바로 그 경험을 우리와 연결시키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의 빈곤은 사적인 경험뿐 아니라 인류의 경험 전체가 빈곤해졌음을, 일종의 새로운 야만성을 뜻한다.

 - 174쪽. 우리는 그것을 새로운 긍정적인 개념의 야만성으로 부르고자 한다. 경험의 빈곤은 야만인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데로 이끈다. 새롭게 시작하기, 적은 것으로 견뎌내기.

 - 175쪽. 클레나 현대건축의 선구자 아돌프 로스와 같은 프로그램이 뚜렷한 예술가들은 각 태어난 아기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이 시대의 더러운 기저귀에 누워 있는 벌거벗은 동시대인에게 눈을 돌리기 위해, 전승되어온 장중하고 고결한 인간상, 과거의 온갖 제물들로 치장한 인간상을 박차고 나온다. [휴머니즘의 원칙을 거부하는 ‘탈인간화’ 과정으로서.]

 - 178쪽. 경험의 빈곤. 이것을 마치 사람들이 새로운 경험을 동경한다는 것처럼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 사람들은 경험에서 풀려나고 싶어하며, 그들이 그들의 빈곤을, 외적 빈곤과 결국 내적 빈곤까지도, 순수하고 분명하게 통용시킬 수 있는 환경, 그리하여 뭔가 훌륭한 것이 여기서 나오게 될 그런 환경을 동경한다. 그들은 언제나 무지한 것도,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다. 종종 우리는 정반대를 말할 수 있다. 즉 그들은 그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고 ‘문화’와 ‘인간’을 삼켜버렸고, 그리하여 그것들로 너무 배가 불러 지쳐버렸다고.


- 179쪽. 자연과 기술, 원시성과 안락함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새로운 삶.


- 180쪽. "우리는 빈곤해졌다. 우리는 종종 ‘현재적인 것’의 작은 동전을 대가로 받기 위해 인류의 유산 한 조각 한 조각을 포기했고, 때로는 가치의 백분의 일만큼이라도 전당포에 맡겨야만 했다. 경제위기가 문앞까지 왔고, 그 뒤에 그림자가, 다가올 전쟁이 있다. 움켜쥐는 것은 오늘날 소수의 권력자들의 사안이 되었고, 이들은 아마 수많은 사람들보다 더 인간적이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더 야만적일 테고, 그렇지만 좋은 방식으로 야만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새롭게, 적은 것을 가지고 꾸려나가야만 한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을 자신의 일로 만들고 그 새로운 것을 통찰과 포기 위에 구축한 사람들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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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니오 Trackback 0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