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2장 역반란들
37.1 문제의식 : 2장은 예외상태와 전지구적 내전에 의해 창출된 “전쟁기계”의 내적 모순을 분석할 것이다. 역반란들로서의 이 새로운 전쟁 모델은 두 가지 모순으로 특징지어진다. (a) 전통적인 전쟁방법에서 벗어남으로써 유래한 모순. (b) 삶권력과 전쟁이 불가피하게 대면해야 하는 사회적 노동의 새로운 형태들과 사회의 새로운 조건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모순. 이 모순들은 어떠한 형태의 저항과 해방이 가능한지를 인식하는, 어떻게 전지구적 전쟁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발견하는 발판을 제공할 것이다.
1절 새로운 전쟁의 탄생
37.2 새로운 전쟁에 대한 낡은 인식 : 탈근대전쟁이 전근대적 전쟁과 닮아 있기는 하다. 그래서 전쟁이 국민국가들 간의 갈등으로 제한되었던 근대는 인류가 도덕적․종교적 용어로 덧코드화되는 오늘날의 불명확한 전쟁상태로 되던져지기 이전 몇 세기동안의 짧은 유예기간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처럼 낡은 요소들[도덕, 종교]이 재출현한 것이라는 인식은 새로운 전쟁을 파악하는 적절한 시도는 아니다.
37.3 전쟁의 시기구분 : 1차대전(1914-18)과 2차대전(1939-45)에 이어 곧바로 새로운 종류의 냉전에 돌입했고, 냉전의 붕괴(1989-91)는 4차대전으로 간주될만한 현재의 제국적 내전상태에 자리를 내주었다. 이러한 시기구분은 이전의 전지구적 갈등들과의 차이들 및 연속성을 인식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유용한 출발점이다. 냉전은 전쟁이 정상상태가 되었음을 확립시켰으며, 설혹 전쟁의 포화가 멈추었어도 그것이 전쟁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그 형태만 바꾼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 전쟁의 본성변화 : (1) 1차대전은 유럽의 국민국가들 간의 갈등이었다. 그것은 유럽 국민국가들의 제국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인 구조들의 전지구적 확장에 기인한 것이었다. (2) 2차대전은 한동안 아시아와 유럽에 집중되었지만 소련과 미국의 개입으로 해결되었고, 이 두 열강은 이후 새로운 전지구적 갈등의 진영을 결정했다. (3) 냉전은 대부분의 국민국가들이 양 진영 중 한쪽에 줄을 서는 전지구적 양자택일을 공고히 했다. (4) 제국적 전쟁상태에서는 주권적 국민국가들이 더 이상 갈등의 진영을 일차적으로 정하지 못한다. 오늘날의 전쟁터에는 새로운 배우들이 있으며, 이들의 정체를 밝히는 보다 분명히 밝히는 것이 이러한 계보학을 구축하는 핵심적 과제 중 하나이다.
38.1 국제관계에서의 변화 : 현재의 전쟁상태의 개시일을 냉전의 붕괴일로 보는 것보다는 1972년 5월 26일, 즉 미소 간의 탄도요격미사일협정(ABMT)일로 보는 것이 더 시사적이다. 이때가 핵경쟁으로 치닫던 근대적 의미의 전쟁(즉 고강도의 갈등과 파괴를 수반하는 보편화된 전쟁)이 흔들리기 시작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 뒤로는 대량학살이 더 이상 병법의 일부가 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행동이 반복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전쟁은 응집된 거대한 위협에 맞선 방어에 방향을 맞추기 보다는 확산되는 작은 위협들에 초점을 맞추고, 적의 파괴보다는 적의 변형이나 생산으로 기울었다. 전쟁은 억제되었다. 거대 열강들은 전면적인 대규모 전투보다는 고강도 경찰행동들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물론 고강도의 경찰행동은 종종 저강도의 전쟁과 구별되지 않는다. 이 갈등들이 때로는 전쟁으로 변형될 때에도, 그것들은 20세기의 총동원 전쟁처럼 확대되지 않았다. 요컨대 1972년 5월 26일에 전쟁은 전지구적 사회질서의 구축 및 재생산을 겨냥한 삶권력의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다.
39.1 생산에서의 변형 : 1970년대 초에 일어난 전쟁의 형식과 목적의 이동은 전지구적 경제에서의 거대한 변형(1971년 달러본위제와 1973년 1차 석유위기)의 시기와 일치했다. 이때는 화폐 및 경제위기의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복지국가가 파괴되기 시작하고, 경제적 생산의 헤게모니가 공장에서 사회적이고 비물질적인 분야들로 이동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39.2 전쟁과 무기의 삶전체로의 확산 : 이러한 탈근대적인 삶권력의 전쟁은 생산에서의 이동과 아주 분명하게 연결된다. 왜냐하면 전쟁은 항상 생산과 결합되었고, 아마도 점점 더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근대의 전쟁과 근대의 산업이 손에 손잡고 발전했듯이, 탈근대 전쟁은 대규모 산업의 기술과 형태를 채택 및 확대하고, 그것들을 새로운 사회적, 비물질적 생산의 혁신들에 덧붙인다. 오늘날 군사적 통제와 조직화는 주로 소통 및 정보 기술을 통해 행사된다. 게다가 특히 흥미로운 것(그리고 위험한 것)은 새로운 핵기술과 화학기술의 발전에 더한 생물학적 기술들과 산업들의 군사적 목적을 위한 발전이다. 전통적인 산업기술들과 나란히, 소통 및 정보통제 기술이 더해졌을 때, 그 결합된 힘은 전쟁에 복무하는 거대한 병기고를 구성한다. 따라서 탈근대적 전쟁은 이동성과 유연성에 기초를 두고, 비물질노동을 통합하는 포스트포드주의적 생산의 특징을 갖는다. 전통적이고 근대적인 [전쟁과 무기의] 비확산의 노력은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새로운 생산적 기술들이 이른바 “확산하는 확산”의 기초를 제공했다.
40.1 군산복합체 아니죠~. 군생복합체 : 전쟁과 생산의 관계를 제기할 때, 그것을 종종 “군-산 복합체”로 부르는 단순화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한다. 이 용어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제국주의적 국면에서 주요한 산업기업과 군대-경찰 사이의 이해관계의 합류점에 이름을 붙이려고 만들어졌다. ‘군산복합체’라는 생각은 1960년대에 전쟁산업이 인류 운명 전반에 대해 행사한 통제력을 표현하는 신화적 상징물이 되기 시작한다. 달리 말해, 그것은 저항 및 해방운동들에 대응하는 산업, 전쟁, 제도들 간의 복잡한 관계들의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역사의 주체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인민주의적 용어로 ‘군산복합체’에 무비판적으로 준거하는 것은 역사적 과잉단순화의 형태가 되었는데, 이는 전쟁과 그것의 원인, 그것의 사회적 규정들에 대한 정치적 이론적 분석들에서, 계급갈등 및 반란 그리고 오늘날의 다중의 운동들에 대한 실재적인 고려를 제거하는데 복무한다. 이 운동들은 그것들이 생생하게 표현되는 전 영역에서 주권권력이 대응하고 통제해야만 하는 운동들이다. 적을 파괴하려고만 하는 전쟁은 오늘날 새로운 형태의 명령을 뒷받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전쟁은 삶을 파괴해야 할 뿐만 아니라 창조해야 한다. 이 점에서 “군산복합체”보다는 “군-생(vital) 복합체”에 대해 말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삶권력과 전쟁이 실재에서, 그리고 우리의 분석의 모든 수준에서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