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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

1부 3장 4절 떼 지성


- 분산된 네트워크는 떼지어 적을 공격하고 다시 주위환경으로 사라지는 듯 보인다. 네트워크 외부에서 보면, 그 공격은 자생성과 무질서로만 움직이는 중심없는 비조직처럼, 그래서 미지의, 예상할 수 없는 공격자인 새나 곤충 때처럼 보인다. 하지만 네트워크 내부에서 보면, 그것이 실제론 조직적, 합리적, 창의적임을 알 수 있다. 네트워크는 떼지성을 지닌다.


- 최근의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이렇게 중앙집중적 통제나 보편적 모델없이도 문제를 해결하는 집합적이고 분산된 기술에 떼지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전의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지능이 개체의 지력(mind)에 기초한다고 가정하는 반면, 그들은 지능이 근본적으로 사회적이라고 주장하면서, 개미, 벌, 흰개미같은 군집생물이 정교한 구조물을 세우는 행태와 유비시킨다. 개체로서의 흰개미들 중 어느 것도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흰개미 떼는 중앙 통제 없이 소통에 기초한 지능체계를 형성한다.


- 그들의 떼 모델은 떼의 개별 행위자들이나 입자들이 실제로 동일하며 창의적이지 않다고 가정하지만, 새로운 네트워크 정치조직에서 출현하는 떼들은 상이한 창의적 행위자들의 다중으로 구성된다. 그들은 인종, 성별, 섹슈얼리티 등등에서 차이를 유지한다. 그래서 우리가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은, 갖가지 다양체의 소통과 협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집단지성이다.


- 이것은 랭보가 파리꼬뮌에 바치는 자신의 찬가에서 혁명적 꼬뮈나르들을 왜 곤충들로 상상했는지를 이해하게 해준다. 물론 적의 군대에도 이 곤충떼의 이미지가 부여되기도 했다. 에밀졸라가 대패배에서 프랑스 진지로 몰려드는 프러시아인들을 ‘검은 떼’로 묘사할 때처럼 말이다. 이런 은유는 불가피한 패배를 강조하는 한편 (지성이 없다는 식의) 적의 열등성을 그려내는 것이다. 랭보가 꼬뮈나르들이 개미들처럼 도시를 돌아다니고, 그들의 바리케이트가 개미탑처럼 활기로 북적거린다고 할 때, 그는 몸 속의 감각들을 다시 각성시키고 다시 발명하는 것은 살의 윙윙거림과 붕붕거림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랭보와 꼬뮈나르들이 보여준 것은 결국 새로운 종류의 지성이며, 집단지성이자 떼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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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2장 역반란들

 

37.1 문제의식 : 2장은 예외상태와 전지구적 내전에 의해 창출된 “전쟁기계”의 내적 모순을 분석할 것이다. 역반란들로서의 이 새로운 전쟁 모델은 두 가지 모순으로 특징지어진다. (a) 전통적인 전쟁방법에서 벗어남으로써 유래한 모순. (b) 삶권력과 전쟁이 불가피하게 대면해야 하는 사회적 노동의 새로운 형태들과 사회의 새로운 조건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모순. 이 모순들은 어떠한 형태의 저항과 해방이 가능한지를 인식하는, 어떻게 전지구적 전쟁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발견하는 발판을 제공할 것이다.

 

1절 새로운 전쟁의 탄생

37.2 새로운 전쟁에 대한 낡은 인식 : 탈근대전쟁이 전근대적 전쟁과 닮아 있기는 하다. 그래서 전쟁이 국민국가들 간의 갈등으로 제한되었던 근대는 인류가 도덕적․종교적 용어로 덧코드화되는 오늘날의 불명확한 전쟁상태로 되던져지기 이전 몇 세기동안의 짧은 유예기간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처럼 낡은 요소들[도덕, 종교]이 재출현한 것이라는 인식은 새로운 전쟁을 파악하는 적절한 시도는 아니다.

 

37.3 전쟁의 시기구분 : 1차대전(1914-18)과 2차대전(1939-45)에 이어 곧바로 새로운 종류의 냉전에 돌입했고, 냉전의 붕괴(1989-91)는 4차대전으로 간주될만한 현재의 제국적 내전상태에 자리를 내주었다. 이러한 시기구분은 이전의 전지구적 갈등들과의 차이들 및 연속성을 인식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유용한 출발점이다. 냉전은 전쟁이 정상상태가 되었음을 확립시켰으며, 설혹 전쟁의 포화가 멈추었어도 그것이 전쟁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그 형태만 바꾼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 전쟁의 본성변화 : (1) 1차대전은 유럽의 국민국가들 간의 갈등이었다. 그것은 유럽 국민국가들의 제국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인 구조들의 전지구적 확장에 기인한 것이었다. (2) 2차대전은 한동안 아시아와 유럽에 집중되었지만 소련과 미국의 개입으로 해결되었고, 이 두 열강은 이후 새로운 전지구적 갈등의 진영을 결정했다. (3) 냉전은 대부분의 국민국가들이 양 진영 중 한쪽에 줄을 서는 전지구적 양자택일을 공고히 했다. (4) 제국적 전쟁상태에서는 주권적 국민국가들이 더 이상 갈등의 진영을 일차적으로 정하지 못한다. 오늘날의 전쟁터에는 새로운 배우들이 있으며, 이들의 정체를 밝히는 보다 분명히 밝히는 것이 이러한 계보학을 구축하는 핵심적 과제 중 하나이다.

 

38.1 국제관계에서의 변화 : 현재의 전쟁상태의 개시일을 냉전의 붕괴일로 보는 것보다는 1972년 5월 26일, 즉 미소 간의 탄도요격미사일협정(ABMT)일로 보는 것이 더 시사적이다. 이때가 핵경쟁으로 치닫던 근대적 의미의 전쟁(즉 고강도의 갈등과 파괴를 수반하는 보편화된 전쟁)이 흔들리기 시작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 뒤로는 대량학살이 더 이상 병법의 일부가 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행동이 반복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전쟁은 응집된 거대한 위협에 맞선 방어에 방향을 맞추기 보다는 확산되는 작은 위협들에 초점을 맞추고, 적의 파괴보다는 적의 변형이나 생산으로 기울었다. 전쟁은 억제되었다. 거대 열강들은 전면적인 대규모 전투보다는 고강도 경찰행동들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물론 고강도의 경찰행동은 종종 저강도의 전쟁과 구별되지 않는다. 이 갈등들이 때로는 전쟁으로 변형될 때에도, 그것들은 20세기의 총동원 전쟁처럼 확대되지 않았다. 요컨대 1972년 5월 26일에 전쟁은 전지구적 사회질서의 구축 및 재생산을 겨냥한 삶권력의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다.

 

39.1 생산에서의 변형 : 1970년대 초에 일어난 전쟁의 형식과 목적의 이동은 전지구적 경제에서의 거대한 변형(1971년 달러본위제와 1973년 1차 석유위기)의 시기와 일치했다. 이때는 화폐 및 경제위기의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복지국가가 파괴되기 시작하고, 경제적 생산의 헤게모니가 공장에서 사회적이고 비물질적인 분야들로 이동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39.2 전쟁과 무기의 삶전체로의 확산 : 이러한 탈근대적인 삶권력의 전쟁은 생산에서의 이동과 아주 분명하게 연결된다. 왜냐하면 전쟁은 항상 생산과 결합되었고, 아마도 점점 더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근대의 전쟁과 근대의 산업이 손에 손잡고 발전했듯이, 탈근대 전쟁은 대규모 산업의 기술과 형태를 채택 및 확대하고, 그것들을 새로운 사회적, 비물질적 생산의 혁신들에 덧붙인다. 오늘날 군사적 통제와 조직화는 주로 소통 및 정보 기술을 통해 행사된다. 게다가 특히 흥미로운 것(그리고 위험한 것)은 새로운 핵기술과 화학기술의 발전에 더한 생물학적 기술들과 산업들의 군사적 목적을 위한 발전이다. 전통적인 산업기술들과 나란히, 소통 및 정보통제 기술이 더해졌을 때, 그 결합된 힘은 전쟁에 복무하는 거대한 병기고를 구성한다. 따라서 탈근대적 전쟁은 이동성과 유연성에 기초를 두고, 비물질노동을 통합하는 포스트포드주의적 생산의 특징을 갖는다. 전통적이고 근대적인 [전쟁과 무기의] 비확산의 노력은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새로운 생산적 기술들이 이른바 “확산하는 확산”의 기초를 제공했다.

 

40.1 군산복합체 아니죠~. 군생복합체 : 전쟁과 생산의 관계를 제기할 때, 그것을 종종 “군-산 복합체”로 부르는 단순화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한다. 이 용어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제국주의적 국면에서 주요한 산업기업과 군대-경찰 사이의 이해관계의 합류점에 이름을 붙이려고 만들어졌다. ‘군산복합체’라는 생각은 1960년대에 전쟁산업이 인류 운명 전반에 대해 행사한 통제력을 표현하는 신화적 상징물이 되기 시작한다. 달리 말해, 그것은 저항 및 해방운동들에 대응하는 산업, 전쟁, 제도들 간의 복잡한 관계들의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역사의 주체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인민주의적 용어로 ‘군산복합체’에 무비판적으로 준거하는 것은 역사적 과잉단순화의 형태가 되었는데, 이는 전쟁과 그것의 원인, 그것의 사회적 규정들에 대한 정치적 이론적 분석들에서, 계급갈등 및 반란 그리고 오늘날의 다중의 운동들에 대한 실재적인 고려를 제거하는데 복무한다. 이 운동들은 그것들이 생생하게 표현되는 전 영역에서 주권권력이 대응하고 통제해야만 하는 운동들이다. 적을 파괴하려고만 하는 전쟁은 오늘날 새로운 형태의 명령을 뒷받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전쟁은 삶을 파괴해야 할 뿐만 아니라 창조해야 한다. 이 점에서 “군산복합체”보다는 “군-생(vital) 복합체”에 대해 말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삶권력과 전쟁이 실재에서, 그리고 우리의 분석의 모든 수준에서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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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1976년 1월 28일 강의

85-1. 문제의식(최종주장) : 인종주의담론은 인종전쟁담론의 한 국면이며, 기본적으로는 보수주의적이거나 식민지배의 목적에 사용되는 사회-생물학 이론이다. 인종주의 담론은 반역사로서의 인종투쟁이나 인종전쟁의 담론의 변형이지만 그것과 엄밀히 구분되어야 한다.


86-1. 권력정당화로서의 역사담론 :
역사담론은 오랫동안 권력을 정당화하고 그것을 빛나게 하는 이중의 역할을 하는 권력의 의식(儀式)이었다. 첫째, 법의 멍에. 왕과 권력자의 승리를 말하면서 법의 영속성에 따라 권력과 사람을 법률에 연결시키고, 권력의 기능 안에 사람을 배치시키는 것. 둘째, 영광의 광채. 권력자의 영광과 위업을 찬양하여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것. 각종 의례와 전설로서의 역사는 권력을 조작․강화하는 장치이다.

86-2. 중세 역사담론(설화)의 3가지 계보학적 기능 : (1) 왕권의 유구함, 영웅(선조)의 위엄을 말하기. (2) (군주적) 권리의 유구함을 말하기. (3) 왕․군주 등의 이름을 과대평가하기.

87-1. 중세 역사기록(연대기)의 3가지 기억의 기능 : (1) 왕의 행위를 의미있는 것으로 기록하기. (2) 왕의 결정을 신민들과 후손들에게 의무로서 기입하기. (3) 실례의 유포.

88-1. 주권을 강화시키는 역사의 기능 : 로마나 중세사회(인도-유러피언 사회)의 역사형태들에는 앞서 얘기한 두 가지 기능, 법(의무, 계약)에 의한 속박과, 마법적 기능에 의한 현혹이 동시에 나타났다. 즉 권력담론으로서의 역사는 사람들을 굴복시킬 때 사용하는 도구인 의무의 담론이자,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공포로 얼어붙게 하는 눈부신 섬광의 담론이다. 이것은 당시의 권력의 표상이자 권력을 재활성화시키는 과정 그 자체였다.

 

88-2. 새로운 역사담론의 출현 : 그러나 16-17c초에 주권․인종의 담론과는 다른, 인종들 간의 대결과 투쟁의 담론, 반로마적, 반역사적 담론이 나타났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반역사적이다. 이때부터 국가와 군주, 민중과 왕 간의 동일성이 사라졌으며, 그로써 주권은 인종의 결속이 아니라 예속의 기능을 갖기 시작했다. 예컨대 프랑크족과 클로비스 1세에겐 승리였던 역사가 갈로 로맹(골족)인들에게는 패배와 노예의 역사였다. 승리와 예속의 현실법칙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러한 반역사는 군주 통치의 통일성을 해체할 뿐만 아니라 윤영광의 지속성까지도 단절시켰다. 권력의 마법적 빛은 더 이상 사회를 하나로 비춰주지 않으며, 양지와 응지를 나누는 빛으로 변모했다. 인종들의 투쟁으로부터 생겨난 반역사는 이 응달에 관한 담론이다. 이 담론은 잃어버린 영광과 옛권리를 회복시켜줄 약속된 땅을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이 견뎌내야만 했던 굴종과 패배를 열거한다.

 

92-1. 담론 전환의 내용 : 로마의 정치-전설적 역사에서 유대인들의 신화-종교적 역사로, 즉 권력의 연속된 역사를 기록한 연대기의 형식에서 히브리 성서적 형식으로. 이러한 변환 속에서, 성서는 중세 중반기 이후부터 왕권 및 교회의 전횡에 맞서 표출된 반대이론으로, 비판담론으로 기능했다. 성서는 빈곤과 부활의 무기였고, 법과 빛에 대항하는 여론을 일으키는 말이었으며, 로마사(리비우스)에 대항한 반역사였다.

92-2. 기억의 의미전환 : 이 새로운 담론 속에서 기억의 기능 역시 의미가 바뀐다. 새 역사는 이제까지 숨겨져있던 것, 단순히 부주의로 숨겨진 것이 아니라 고의적으로 은폐된 어떤 것을 발굴한다. 결국 새 역사가 보여주려는 것은 권력자와 왕, 그리고 법칙(법?)이 실은 전투장의 정의롭지 못한 우연 속에서 탄생했음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잉글랜드의 정복자 기욤은 정복자로 불리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가 휘두른 전횡이 쟁취된 권리라는 것을 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역사의 역할은 법이 기만이라는 것, 권력은 환상을 심어주며 역사학자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게 된다.

93-1. 고대의 종말 : 로마적 역사담론은 사회를 평정하고 권력을 정당화하고, 사회체를 구성하는 질서(혹은 군주․귀족․평민 계급)를 기초한다. 반면 성서적 역사담론은 사회를 분열시키고, 법에 전쟁을 선포하기 위해서만 법을 말한다. 이 반역사는 어두운 예속과 추락의 역사, 예언과 약속의 역사, 재발견하고 판독해야할 비밀스런 앎의 역사, 그리고 권리와 전쟁을 동시에 선언한다. 자연적인 사물의 질서로의 강력한 회귀를 주장하는 앎과 호소의 담론이며, 더 이상 인도-유러피언 사회의 역사담론처럼 삼원적인 조직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원적 분할 및 지각과 관계가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 종족투쟁의 역사에 대한 담론이 생겨났을 때 고대(고대에서 중세 말까지의 지속성의 의식-프리아모스 왕가의 계통을 잇는다는 의식)는 끝났다. 그 뒤로 유럽의 진짜 기원(예컨대 프랑크족의 침입, 노르만족의 침입 등 정복으로부터의 기원)을 형성할 사건과 그 속에서의 역사적 주인공들(프랑크족-골족-켈트족, 북부인-남부인, 지배자와 피지배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97-2. 근대사회로의 진입 : 이러한 담론전환 속에서 다음 4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담론의 확산 : 종족투쟁의 담론이 반드시 피억압자나 민중의 담론인 것만은 아니다. 처음에는 이 담론이 중세 후기의 민중운동 속에서 신화나 종말론적 주제로 모습을 드러냈지만(17c), 곧 역사적 학문이나 민중문학, 우주-생물학적 사변의 형식으로 확산되었다(19c초). 그리고 이후 식민화된 저급인종의 자격박탈이론에 기여하기에 이른다(19c말-20c초). (2) 균열된 종족 : 종족간의 전쟁이라고 해서 그때의 ‘종족’이 어떤 안정된 생물학적 의미에 고정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매우 넓은, 그러나 상대적으로 고정된 역사적․정치적 균열을 가리킨다. 왜냐면 서로 다른 언어와 종교를 가진 두 종족이 전쟁과 폭력을 통해 수립된 유대관계로서 정치적 공동체를 이룬 것이기 때문이다. (3) 앎의 폭발 : 로마적 역사와 성서적 역사는 공식적 담론과 촌스런 담론(즉 앎을 생산할 능력이 없는 순진한 담론)의 차이로 봐서는 안 된다. 후자는 전자가 이룬 것만큼의 앎을 생산했기 때문이다. 17c에 역사적 인식형성이 폭발했던 것은 두 역사적 실천이 교차했을 때였다. 또한 19c에도 역사적 앎의 풍요기가 찾아왔었다. 민중의 역사, 골족과 프랑크족의 역사, 농민과 제3신분의 역사 등의 담론이 체제의 정통적 역사와 충돌하면서 앎의 영역과 내용이 끊임없이 부딪치고 새롭게 생산되었다. (4) 혁명적 담론 : 이 모든 충돌에도 불구하고 혁명적 담론이 자리잡은 것은 분명 성서적 역사, 투쟁과 요구로서의 역사, 은폐의 폭로로서의 역사, 전쟁의 도구이자 전술적 요소로서의 앎의 사용의 역사, 권력행사의 장에서 자리옮김을 시도한 역사의 쪽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종족간의 (대결의) 역사와 혁명적 기획의 역사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우리의 계급투쟁이론, 그것을 우리는 종족투쟁을 말하는 프랑스 역사가들에게서 발견했다는 것을 자네는 잘 알고 있겠지.”(맑스, ‘1882년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 또한 이것은 주권과 신화의 역사에서 벗어났음을, 즉 근대사회로 진입했음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101-1. 반혁명적 반역사 : 19c초․중반에 이처럼 종족투쟁담론이 혁명담론으로 해석된 순간부터, 즉 종족투쟁 개념이 계급투쟁 개념으로 전환된 순간부터 반역사를 계급투쟁이 아닌 종족투쟁(의학적, 생물학적 의미)의 용어로 새롭게 체계화하려는 시도는 매우 적절한 것(때를 잘 만난 것)이었다. 이렇게 혁명적 형태의 반역사가 형성된 순간, 또 다른 반역사가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혁명적 담론의 역사적 차원을 의학-생물학적 전망(그리고 인종차별주의) 안에서 말살하게 된다는 점에서의 반역사이다. 이제 역사적 전쟁이라는 주제는 생존경쟁이라는 후기 진화론적․생물학적 주제로 전환된다.(전쟁개념의 전투의 종의 분화․적자생존으로의, 생물학적 개념의 전투로의 전환) 즉 두 종족이 나란히 공생하는 이원적 사회의 주제가 생물학적으로 단일한 일원적 사회의 주제로 바뀌게 된 것이다. 정의롭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던 국가가 종족의 순수성과 우월성, 통합을 보장하는 도구로서의 국가로 전환되고, 그래서 종족의 순수성이라는 이념이 인종간 투쟁이라는 이념으로 대치된다.

102-1. 인종주의 및 의학과 주권 : 이 점에서 인종주의는 우연히 서구의 반혁명정책과 연결된 것이 아니며, 또한 단순히 특정 시기에, 일종의 반혁명적 기획 안에 나타나게 될 부가적 이념의 구조물이 아니다. 종족간 투쟁의 담론이 혁명담론으로 변화했을 때, 원래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으나 전혀 다른 의미로 전환된 인종주의는 이제 혁명적 예언과 기획․사상이 되었다. 이제 주권의 생명력과 섬광은 마술-사법적 儀式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의학-규격화의 기술에 의해 확보된다. 법률학에서 생물학으로, 복수의 종족에서 단수의 종족으로, 해방기획에서 순수의 기획으로 관심을 바꿔놓음으로써 국가주권은 종족투쟁의 담론을 다시 취해 그것을 자기 고유의 전략으로 삼은 것이다.

103-1. 나치와 소비에트의 변용 : 혁명담론의 인종주의로의 전환은 20c에 다시 두 번의 변화를 겪었다. 첫째, 19c말의 중앙집권적․생물학적 인종주의. 그리고 근본적으로 수정된 것은 아닌 둘째, 20c의 특정 전략으로의 변형. 그리고 이러한 20c의 변형에는 두 가지 변용형태가 있다. (1) 나치적 변용. 나치는 19c말에 확립된 국가인종주의의 명제를 채택했다. 이 명제는 약간 퇴행적인 방식으로 채택 및 전환되어 과거에 종족간 투쟁의 주제가 나타났던 바로 그 예언적 담론에 이식된 채 기능했다. 그래서 나치즘은 이데올로기적․신화적 풍경 안에서 국가인종주의를 작동시키기 위해 중세적 민중신화를 다시 사용했으며, 또한 한 사람의 영웅의 회귀, 조상들의 옛 전쟁의 계승, 묵시록적인 최후의 새로운 제국의 도래 등의 주제를 담고 있었다. (2) 소비에트식 변용. 이것은 떠들썩한 연극적 전설이 전혀 없는 음밀하면서 희미한 ‘과학주의’적인 변용이다. 이것은 사회적 투쟁이라는 혁명담론을 다시 가져와 경찰국가적 관리와 연결시켰다. 조용하게 사회의 질서를 잡고 사회의 건강을 지켜날 경찰국가적 관리의 적은 새로운 계급의 적, 즉 병자․일탈자․광인이다. 그 결과 과거 계급의 적에 대항하던 무기(전쟁, 변증법, 신념이라는 무기)는 이제 종족의 적으로서의 계급의 적을 말살하는 의학적 경찰이 되었다. 혁명담론은 국가의 행정적 산문으로 변모했다.

105-1. 반혁명이 가져온 풍경. 로마의 재정복 : 페트라르카는 중세의 끝트머리(1373년)에서 “역사 안에 로마 칭송이 아닌 것이 어디있는가?”라고 물었었다. 이것은 이제 “역사 안에 혁명의 공포 또는 호소 아닌 것이 무엇이 있는가?”라고 바뀌어 물어져야 하며, 여기에 “만일 새롭게 로마가 혁명을 정복한다면?”이라고 되물어져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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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모든 기술과 탐구, 또 모든 행동과 추구는 어떤 '좋음'을 목표로 삼는다. 
1.2 모든 기술에서 으뜸가는 기술의 목적은 그것에 종속되는 목적보다 더 좋다.

2.1 선 중에서도 최고의 선(좋음)은 목적 그 자체로 추구되는 것이다.
2.2 여러 가지 기술(기예) 중에 가장 우위에 있는 것은 정치학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정치체 안에서 어떤 학문이 연구되고, 어느 정도까지 배워야 하는가를 정하는 것은 정치학이기 때문이며, 또한 정치학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되는가를 입법함으로써, 다른 학문의 목적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2.3 그리고 그러한 정치학의 목적은 바로 인간을 위한 좋음이어야만 한다.

3.1 그러나 정치학의 대상이 되는 훌륭한 행동이나 옳은 행동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 각각의 견해차가 크기 때문에, 규범적(nomos)으로만 존재하고, 자연적(physis)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될 수 있다. 그것은 정치학 연구의 결론이 개연적일 수 있음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3.2 젊은이는 정념을 따르기 쉽기 때문에 정치학의 청강자로 적합하지 않으며, 이성적인 원칙에 따라 욕구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에게만 그 지식이 유익하다.

4.1 정치학이 목표로 삼는 최고의 선은 행복(eudaimonia)이다.
4.2 플라톤은 이 논의를 함에 있어, '제1원리(arche)로부터의 논의'와 '제1원리를 향한 논의'를 구분할 필요가 있으며, 좋은 습관 속에서 자란 사람은 '제1원리로부터의 논의'가 별도로 얘기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랜 습관으로 이미 충분하고 옳은 출발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5.1 삶의 형태에는 (1) 향략적 삶, (2) 정치적 삶, (3) 관조적 삶이 있다.
5.2 그렇다면 좋음과 행복은 무엇인가? (1) 어떤 이들은 쾌락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짐승과 우리를 구분하지 못한다. (2-1) 어떤 이들은 명예를 얻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그것을 받는 사람보다 하사하는 사람에게 달려있는만큼 그 자체로 선일 수 없다. (2-2) 어떤 이들은 덕(arete)이 정치적 생활의 목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덕을 가지고 있지만 일생동안 아무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뭔가 부족하다. (2-3) 어떤 사람은 그것이 부라고 말하는데, 돈을 버는 생활은 부득이해서 하는 것이며, 그것은 유용한 것일 뿐이고, 또 다른 어떤 좋음에 의존한다.

6. 플라톤(주의) 비판
6.1 플라톤주의자들은 보편적 좋음을 논하는데 있어 '형상(eidos)'을 끌어들였다. 이들에게 선(좋음)은 (제2) 실체나 성질, 관계에 사용되며, (제1) 실체(즉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는 본성상 관계보다 앞선다.
6.2 모든 선에 공통되는 이데아란 없다. 선은 존재만큼이나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단일한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든 각각의 선에 속하는 여러 학문이 있음을 의미한다.
6.3 나아가 '선 자체'나 '개개의 선'은 그것들이 모두 선인 한에 있어 아무런 차이도 없으며, 또 선 자체가 영원하다고 해서 다른 선보다 더 선하다고 할 수도 없다. 영원히 흰 것이 한 나절 흰 것보다 더 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6.4 플라톤학파에 따르면 선은, 그 자체로서의 선과 그런 선들로 인해 선인 것 이렇게 2가지가 있다. 그런데 만일 그들의 말처럼, 그 자체로 선하면서 다른 선들과 독립되어 있는 선의 이데아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거나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논의하는 선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6.5 그리고 그런 선을 설혹 획득한다고 해도, 그것이 여러 학문들에 실제로 도움이 될지도 미지수다. 의사가 선 자체를 안다고 해서 그가 자신의 치료행위에 도움을 얻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다만 인간의 건강, 아니 개개 인간의 건강을 연구하기 때문이다.

7.1 궁극목적으로서 최고의 선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구하려는 것이며, 그것은 행복이다. 명예나 쾌락이나 지성(nous)이나 그 밖의 덕의 경우도 모두 우리가 행복하게 되기 때문에 그것들을 선택하는 것이다.
7.2 궁극적 선은 자족(autarkeia)으로 생각되곤 하는데, 이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자족이란 고립된 사람에게 충족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자녀, 일반적으로 친구들과 동포들을 위해 충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래 정치적(politicon)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어쨌든 자족은 그것만으로 생활을 바람직한 것이 되게 하며, 또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것으로 정의되는데, 행복이 바로 그런 것이다.
7.3 인간에 속하는 목수나 피혁공은 자신의 기능 내지 활동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들을 포함하는 인간 자체도 그 자신의 기능이나 활동이 있을 것이다.
7.4 생명(생육적 삶)은 식물에게나 인간에게나 공통된다는 점에서 인간 특유의 기능은 아니다. 지각적 삶 역시 소나 말에게 공통적이다.
7.5 결국 남는 것은 영혼(psyche/soul)의 이성적 원리의 활동적 삶뿐이다. 이때 이성적이라는 말은 다시 둘로 나뉘는데 하나는 이성적 원리에 순종한다는 의미에서 이성적이요, 다른 하나는 이성적 원리를 소유하며 이성적으로 사유한다는 의미에서 이성적이다. 그에 따라 이성적 원리의 삶은 2가지 의미(dynamis, energeia)를 지닌다.
7.6 이처럼 인간의 기능이, 이성적 원리에 순응하거나 그 원리를 포함하는, 영혼의 활동이라고 한다면, 훌륭한 사람이란 이러한 활동을 훌륭하게 수행하는 것이며, 따라서 인간의 좋음이란 결국 덕에 일치하는 영혼의 활동이다. 덕이 여러가지가 있다면 그 중 가장 좋고 가장 완전한 것에 일치하여 영혼이 활동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선(좋음)이다.

8.1 좋음은 지금까지 3종류로 나눠져왔다. 외부적인 좋음, 영혼에 관계되는 좋음, 신체에 관계되는 좋음이 그것이다. 이중 영혼에 관계되는 좋음이 가장 탁월하고 참되며, 이때 영혼에 관계되는 좋음이란 정신의 능동과 활동을 말한다. 이러한 정의에 따른 좋음이 능동이나 활동을 목적으로 삼는 한에서, 그것은 외부적인 좋음에 들어가지 않는다.
8.2 행복한 사람은 잘 살며, 잘 행하는 사람이다. 행복은 일종의 좋은 삶 혹은 좋은 행위(eupraksia)이기 때문이다. 또한 행복을 덕있는 활동으로 보는 것(이는 덕을 단순히 소유하는 것과는 다르다. 덕있는 활동은 덕을 행사하는 것이다.) 역시 우리의 정의에 부합한다. 덕있는 활동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행동하며 또 잘 행동한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그 자체로 즐겁다. 왜냐하면 쾌락이란 정신의 상태인데, 각 사람에게 그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은 즐거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그들의 삶은 외부로부터 우연히 밀려오는 쾌락을 요구하지 않으며, 다만 그 자체 속에 쾌락을 지니고 있다.  
8.3 이것은 델로스 신전에 새겨진 말을 떠오르게 한다. "가장 고귀한 것이 가장 옳은 것이요, 가장 좋은 것은 건강이다. 그러나 가장 즐거운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취하는 것이니." 이 모든 특성이 최선의 여러 활동에 속해있으며, 이 활동이 바로 행복이다.
8.4 하지만 그럼에도 행복은 또한 외부적인 여러 가지 좋음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적당한 수단이 없으면 고귀한 행위를 하는 일이 불가능하거나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좋은 친구나 많은 재물, 정치권력, 좋은 집안, 좋은 자녀, 미모 등. 행복은 이런 류의 좋은 조건을 구비해야만 될 것 같다. 그런 까닭에 어떤 이들은 행복을 덕과 동일시하지만, 다른 이들은 행복을 행운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9.1 이런 이유로, 행복이 학습이나 습관, 훈련에 의해 얻어지는 것인지, 신의 섭리 때문에 생기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우연히 생기는 것인지의 문제가 제기된다. 만일 신이 인간에게 선물을 준다면, 행복이야말로 신이 준 최고의 선물이며, 혹시 행복이 학습이나 훈련에 의해 얻어진다고 해도 그것 역시 가장 신적인 것임에는 분명하다.
9.2 행복은 덕에 대한 능력이 아주 없어지지 않는 한, 누구나 학습이나 마음 씀씀이에 의해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행복은 우연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영혼의 덕있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9.3 정치학의 목적은 최고의 선이며, 따라서 정치학은 폴리스의 시민을 일정한 성격을 가진 인간이 되도록, 즉 좋은 인간, 또 고귀한 행위를 하는 인간이 되도록 심혈을 기울인다.
9.4 우리는 소나 말을 두고 행복하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소년도 행복할 수 없다. 행복하다는 말을 듣는 소년들은 우리가 그들에 대해 가지는 소망 때문에 그런 말을 듣는 것이다. 왜냐하면 행복은 온전한 덕과 삶 전체를 통해 비로소 성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최대의 행운 속에서 살다가 최후에 비참한 죽음을 맞은 프리아모스 대왕을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10.1 그렇다면 아무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행복할 수 없는가? 그럼 행복을 일정한 활동이라고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10.2 하지만 죽은 사람을 행복하다고 하지 않는다고는 해도, 악과 선은 죽은 사람에게도 존재할 수 있다. 이때 악과 선이란 자손들의 명예와 불명예, 행운과 불운 같은 것이다. 물론 행복하게 죽은 사람이 사후의 변화로 비참해진다고 하는 것은 부조리하다.
10.3 만일 운이 사람의 행복을 결정한다면 우리는 같은 사람을 두고도 때로는 행복하다, 때로는 비참하다고 하게 될 것이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운에 달려 있지 않다. 운은 삶에 부차적인 것일 뿐이지만, 반대로 덕있는 활동은 영속적이다. 덕있는 활동 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특성은 그것의 지속성이다. 지속성은 행복한 사람에게 속하며, 그는 평생을 통해 행복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무엇보다도 덕있는 행동과 사색에 몰두할 것이요, 또 그가 "참으로 선"하고 "나무랄데 없이 곧으면" 삶의 여러 변화를 고상하면서도 품위있게 겪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고통에 대해 무감각해서가 아니라 정신의 고귀함과 위대함으로 불행을 겪어내면서 자신의 덕성을 드러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행복한 사람치고 비참하게 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행복한 사람은 변화하기 쉬운 사람도 아니다. 그는 쉽사리 불운에 의해 행복한 상태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11. 설혹 죽은 사람에게 선과 악이 그 자손에 의해 영향을 끼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죽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미약한 만큼 무시해도 좋다.

12.1 행복은 찬양받을 만한 것인가? 아니면 소중히 여겨질만한 것인가?
12.2 일반적으로 선한 사람과 덕있는 사람은 그들의 행동과 기능때문에 찬양받지만, 그렇다고 찬양이 최선의 것들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도 정의를 찬양하지 않는 것처럼 행복을 찬양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이 복되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행복이 덕이나 선보다 보다 더 신적이고 보다 더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12.3 찬양이나 칭송은 덕의 결과로 하는 어떤 행위에 대해 하는 것이다. 행복이 칭송받을만한 것이 아닌 것은 그것이 칭송보다 더 좋은 어떤 것임을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행복은 소중히 여겨지는 완전한 것들 중에만 속한다.

13.1 행복이 완전한 덕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라면, 덕의 본성은 무엇인가?
13.2 이때 덕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적 덕', 즉 '정신의 덕'이다. 정신의 비이성적 요소에는 식물적인 것, 즉 음식물의 섭취와 성장의 원인이 되는 것이 있으며, 다른 것으로는 이성적 요소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비이성적인 것이 있다. 물론 그 속에는 이성적 원리에 대립하여 그에 대항하여 싸우는 면도 있다. 그것은 욕구적/욕망적 요소이다. 자제를 잘 하는 사람은 이 요소가 이성적 원리에 순종한다.
13.3 그리고 이성적 원리에도 두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엄밀한 의미에서 그 자체 속에 이성적 원리(수학적 원리를 인식하는 것)를 가지며, 다른 하나는 우리가 부친의 말을 순종하는 것처럼 순종하는 경향을 가진다.
13.4 덕에도 이러한 구분이 있다. 즉 덕에는 지적인 덕(철학적 지혜, 이해력)과 도덕적인 덕(온화함, 절제)이 있으며, 우리는 이 두가지 모두를 지닌, 즉 현명하거나 절제력있는 이들의 칭찬할만한 정신상태를 덕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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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iger

2010/08/26 23:41 : 분류없음
윌리엄 블레이크, [천국과 지옥의 결혼], 민음사, 2007.

호랑이

호랑이여! 호랑이여! 밤의 숲속에서
빛나게 불타고 있는 호랑이여!
어떤 불멸의 손 또는 눈이
그대의 무시무시한 대칭을 만들 수 있겠는가?

어떤 먼 심연 혹은 하늘에서
그대 눈의 불이 탔는가?
어떤 날개 위에 감히 그는 치솟아올라,
어떤 손으로 그대 불길을 감히 잡겠는가?

어떤 어깨 또는 어떤 기예가
그대 가슴의 힘줄을 비틀 수 있겠는가?
그대의 가슴이 고동치기 시작할 때
어떤 무서운 손 또는 무서운 발이,

어떤 망치가 또는 쇠사슬이 그 고동을 멈추는가?
그대의 머리는 어떤 용광로에, 모루에 있었는가?
어떤 무서운 포박으로
무시무시한 그대를 감히 가둘 수 있는가?

별들이 창을 내던져 버리고
그들의 논물로써 천국을 적실 때,
하느님은 자신의 작업에 미소지었던가?
양을 만든 그분이 그대를 만들었는가?

호랑이여! 호랑이여! 밤의 숲속에서
빛나게 불타고 있는 호랑이여!
어떤 불멸의 손 또는 눈이
그대의 무시무시한 대칭을 만들 수 있겠는가?

Tiger! Tiger! burning bright
In the forests of the night,
What immortal hand or eye
Could frame thy fearful symmetry?

In what distant deeps or skies
Burnt the fire of thine eyes?
On what wings dare he aspire?
What the hand dare seize fire?

And what shoulder, and what art,
Could twist the sinews of thy heart?
And when thy heart began to beat,
What dread hand? and what dread feet?

What the hammer? what the chine?
In what furnace was thy brain?
What the anvil? what dread grasp
Dare its deadly terrors clasp?

When the stars threw down their spears,
And water'd heaven with their tears,
Did he smile his work to see?
Did he who made the Lamb make thee?

Tiger! Tiger! burning bright
In the forests of the night,
What immortal hand or eye
Could frame thy fearful symm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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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회 한/일 기본소득네크워크 공동 심포지움

한국‧일본의 기본소득 비전과 대안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

 

* 날짜 : 2010년 8월 19일(목) 13:00~19:00

* 주최 : 한․일 기본소득네트워크,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 장소 : 서울시립대학교 자연과학관 국제회의장(2층)

 

* 전체진행 : 권문석(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

 

참가등록(13:00 ~ 13:30)

 

개회사(13:30 ~ 13:40) : 이성백(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소장,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자문위원)

 

제1부(13:40 ~ 14:30) : 한/일 기본소득네트워크 과제와 협력 방안

1. 곽노완(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

2. 최광은(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 사회당 대표)

3. 오자와 슈지(일본 교토부립대, 기본소득일본네트워크 대표)

4. 야마모리 도루(일본 도시샤대, 기본소득일본네트워크 사무국장)

 

제2부(14:30 ~ 15:50) : 한/일 기본소득의 비전

* 사회: 심광현(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1. 강남훈(한신대 경제학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대표): 한국의 기본소득 도입모델

- 토론: 장석준(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연구기획실장) 

2. 야마모리 도루(기본소득일본네트워크 사무국장): 하나인 다중: 동아시아의 투쟁에서 배울 수 있는 것

- 토론: 금민(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 사회대안포럼 운영위원장)

 

휴식(15:50 ~ 16:10)

 

제3부(16:10 ~ 17:30) : 21세기 기본소득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주체 형성

*사회: 임경석(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1. 김원태(독일 마부르크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 가치법칙 비판과 기본소득: 새로운 맑스-독해

- 토론: 이진경(서울산업대 교양학부)

2. 가이 스탠딩(영국 배쓰대,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명예 공동대표): 한국의 프레카리아트: 왜 기본소득을 필요로 하는가?

- 토론: 백승호(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 

 

제4부(17:30 ~ 19:00) : 종합토론

* 사회 : 김세균(서울대 정치학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자문위원)

1. 토론에 대한 발표자 응답

2. 플로어토론

 

- 한국어‧영어 동시통역서비스 제공.

- 참가비 : 10,000원(자료집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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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en.wikipedia.org/wiki/Import_substitution_industrialization

수입대체 산업화(Import Substitution Industrialization)
는 후진국이 기존에 수입해서 사용하던 각종 제품을 국내에서 생산하기 시작함으로써 수입품을 국산품으로 '대체' 한다는 아이디어 이다. 수입 대체 산업화는 수입품에 대한 관세나 할당 제도, 국내 생산자에 대한 보조금 지급등의 수단을 통해 수입품을 인위적으로 비싸게 만드는 방법으로 수행되는데, 1930년대 많은 남미 국가들이 채택했다. 당시 남미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식민지 였거나, 자체적으로 관세 제도를 실행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한 '불평등 조약'의 피해자라는 점에서 수입 대체 산업화 전략을 실행에 옮길 만한 형편이 아니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은 194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 중반 사이 독립을 획득한 후에야 수입 대체 산업화 전략을 채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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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onwealth 40쪽.
참고도서: [17세기 영국의 수평파 운동], 이승영 지음, 민연, 2001. '3장 수평파 운동의 전개' 중 발췌.

- 1645년 6월 의회군의 네이즈비 전투를 끝으로 청교도 혁명(의회파와 국왕파의 내전)이 끝나자, 전쟁기간 드러나지 않았던 분파의 대립이 의회파 안에서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분파는 장로파와 독립파로 나뉘는데, 전자는 의회를, 후자는 군대를 각각 장악하고 있었다. 1647년 초 의회는 혁명군을 해산하려 했으나, 군대는 이에 정면으로 대립하게 되었다. 이러한 대립은 수평파를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수평파 지도자들은 군과 공동행동을 벌이자는 취지의 팜플렛을 발간하면서, 런던의 분파주의 회중과 급진 정치인들을 기반으로 한 그들의 엉성한 조직을 신형군(New MModel Army)으로까지 확대하기 시작했다.
- 수평파는 분명 그들의 적대자들이 붙인 이름이겠지만, 수평파 지도자 릴번은 다음과 같은 냉소를 통해 수평파라는 이름을 공식화한다. 

"그들이 크롬웰과 아이어턴과 앞서 언급한 그들의 동맹자들의 전제, 억압, 부정을 더는 참으려고 하지 않으나... 모두가 다같이 평준화되고, 법률에 의해 구속되는 (당신들이 말하고 있는) 평준화가 여기에 있다. 그러한 한에서 나는 그들과 더불어 수평파임을 실토한다."
 
수평파는 독점의 확산으로 그들의 경제적 지위가 위협받던 직공이나 소장인, 그들의 밀린 급료를 의회가 메꾸어줄 것인지 아닌지, 전쟁 중에 저지른 행동을 사면해줄 것인지 아닌지를 의심하던 군인들, 그리고 내전이 끝난 후 종교적 자유를 박탈하려던 의회의 의도를 우려한 분파주의자들을 대변했다. 릴번은 그들을

"징박힌 신발을 신은 사람들, 사병들, 가죽과 양모로 만든 앞치마를 입은 사람들, 그리고 영국의 부지런하고 근면한 사람들" 가운데서 찾을 수 있다고 전했다.

- 군대와 손잡게 된 수평파는 1647년 3월 의회에 <대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것은 단순히 의회에 대한 불만만이 아니라 사회, 경제, 법 운영에 관한 시정을 요구하는 수평파의 근본적인 개혁안이었다. 릴번은 장로파에게 아무런 기대도 걸지 않았으며, 직접 인민에게 호소할 작정이었다. 이렇게 제출된 문서를 의회가 불태우고 그 문서의 작성자들을 '인민의 적'으로 선언하고, 나아가 그들의 장교를 구속하자 군대의 반발과 분노는 격앙됐다. 6월 4일과 6월 5일에 각각 발표된 신형군의 <겸허한 항의>와 <엄숙한 서약>은 이제 군대가 명확히 하나의 정치적 혁명 집단으로 변신했음을 뜻하며, 수평파는 이 강력한 집단을 이끌어나가게 되었다. 크롬웰과 페어팩스 장군은 군대의 태도에 놀라 6월 10일 런던시에 부친 편지에서, 군인으로서는 의회에 복종하지만 영국인으로서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은 자유이며, "병사라고 해서 조국의 복지에 관심을 갖는 것을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군대는 6월 14일 더욱 강도를 높인 <군대의 진정>을 선언하면서, 혁명군이 "국가의 자의적인 권력에 봉사하기 위해 고용된 군대가 아니라, 우리 자신과 인민의 정당한 권리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수차에 걸친 의회의 선언에 따라 소집되어 나왔다"고 밝혔다.
- 그러나 처음 군의 한정된 요구에서는 의견일치를 보이던 장교와 사병이 입헌적인 개혁 문제에 이르러서는 의견차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병들 사이에 이미 릴번을 위시한 수평파의 영향력이 깊이 스며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장교들과 사병들의 입장차이가 독립파와 수평파의 차이임을 보여준다. 
- 1647년 10월 5개 기병연대의 사병들은 5월에 선출된 사병대표 대신 새로운 대표를 다시 선출하고, 이들은 사병들의 불만과 의혹을 모두 기재함과 아울러 전면적인 입헌상의 개혁안을 담은 선언서 <군대의 진정한 주장>을 군 사령관 페어팩스 장군에게 재출했다. 이 팜플렛은 민간인 수평파와 군대 수평파가 합작한 것으로, 거기에는 신형군 장교들의 얼버무림과 타락, 부패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군부총회가 소집되었고, 5개 연대의 사병대표들이 제출한 문서가 "청교도 혁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헌정상의 개혁"이라고 불린 이른바 <인민협약>이다.
- 이러한 정세 속에서 군대의 기본방침을 결정하는 회의가 1647년 10월 28일~11월 1일 사이에 런건 근교의 퍼트니 교회에서 열렸다. 회의는 크롬웰의 개회선언으로 시작되었는데, 사병들은 크롬웰이 군대의 이름을 팔아 국왕과 수상쩍은 막후 교섭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크롬웰은 이러한 상황에서 "적대자로 만날 것이 아니라 서로 상대방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려는 마음으로 만나야 할 것"이라고 수평파를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군대 안에서 "각축하고 있는 두 진영이 서로 상대방을 이해시키기에는 그들의 주장 사이에 너무 두드러진 골이 패였으며, 두 진영 사이의 대립은 결국 실력 대결로 끝날 수 밖에 없다는 조짐을 보였다."

- 퍼트니 회의의 핵심쟁점은 선거권 문제와 정치체제에 관한 문제였는데, 여기에서는 정치체제에만 한정시켜 얘기해보자. <인민협약> 1조는 "단일 입법기구가 인민을 대표하게 될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인민협약>을 읽은 후 크롬웰은 "이 문서는 왕국의 통치 그 자체에 중대한 변경을 포함하고 있다"고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에 뒤이어 이 문서를 뒷받침하는 생각은 "비열한 공상과 추론에 불과한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이것을 저지하려는 속셈으로 이 제안의 가부를 논하기 전에 "우리들 군대에게 어떤 의무가 부과되어 있는가, 우리들은 어느 범위까지 계약의 구속을 받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검토해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면서 와일드만과 레인버러는

"일단 계약을 체결하면 비록 그것이 부당한 것이라 하더라도 구속을 받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원칙은 매우 위험하고... 권리와 자유, 자연법과 인민의 법에 바탕을 두는 군대의 최초의 선언에 어긋난 것"이라고 반박했다.

아이어턴에게는 기존의 계약(성문법)이 정부와 소유권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그것을 파기하는 것은 무정부상태를 초래한다고 보았지만, 병사대표들에게는 어떠한 계약도 '인민의 권리'를 빼앗을 수 없으며, 인민의 권리를 규정한 <인민협약>에 따른 정부의 변혁은 멈출 수 없는 것이었다. 아이어턴은 "계약을 준수하는 것이야말로 정의의 원천"이라고 응수했다.


- 장로파 의원에 대한 추방요구를 '자연법과 인민의 법'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려던 <군대의 건의>가 아이어턴이 쓴 것이라면 그의 생각은 불과 4개월 사이에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와일드먼은 바로 이 점을 공격했다. 그는 의회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보고, 군대의 최초의 선언인 <군대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고 말한다. "군대는 자연법과 인민의 법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것에 따르면 사람들은 설령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태만할 때라도 자기 자신을 보존해야 한다. ... 따라서 만일 누구든 인민을 파멸시키려는 일을 할 경우 절대로 옳지 못하므로 인민은 그에 맞서 자신을 지켜도 괜찮을 것이다."
- 국왕과 상원의 폐지를 주장하는 수평파의 의견이 존속을 주장하는 아이어턴의 견해를 압도하는 듯 보였을 때, 크롬웰은 국왕제와 상원제 자체의 불필요함을 시인하면서도 그것을 부당한 방법으로 폐지하는 것은 "욕되고 죄악스러운 행위를 우리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신 스스로 행할 수 있으리라"고 말하면서 한발 물러서는 듯 보였지만 실제적으로는 국왕제와 상원의 존속을 지지하려 했다. 그러나 정면돌파로는 수평파의 기세를 꺾을 수 없다고 생각한 크롬웰은 우회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토론은 지연되었고, 위원회가 설립되어 과격분자들을 색출해 토론에서 몰아내려고 했다. 11월 8일 크롬웰은 병사대표와 장교대표 모두를 해임하고 <군대의 주장>과 <인민협약>을 토론할 새로운 위원회의 구성을 결정하고 전군 집회 대신 3군대로 나누는 분산집회를 결정했다. 릴번과 수평파는 크롬웰을 인민의 배반자라고 규탄하면서 그에 대한 반대운동을 전개했고, 크롬웰 암살계획이 공공연하게 떠놀았다.
- 크롬웰은 11월 14일 페어팩스 장군의 선언을 통해, 병사들에 대한 밀린 급료의 지불과 사면, 불구 상이병과 유자녀에 대한 구호를 보장하는 동시에 의회의 조속한 해산과 새의회 선출이 가능한 평등선거권을 약속했다. 11월 15일 크크부시에서 열린 군의 첫 집회에서 크롬웰과 페어팩스는 군에 대한 통솔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러한 군부총회에 반대해 반대집회를 열었지만 수평파의 핵심인 릴번과 해리슨의 연대만이 참석했고, 나머지 전군은 페어팩스와 크롬웰의 권위에 복종했다. 크롬웰은 곧바로 그 기세를 몰아 주모자를 체포했고, 그 중 3명을 군법회의 회부시켜 사형을 선고했다. 11월 19일 하원은 이러한 크롬웰의 행동을 지지하는 감사결의를 했다. 아휴 수평파의 세는 서서히 꺾이기 시작했다.
- 1648년 5월 제 2차 내전이 일어나자 릴번의 크롬웰에 대한 비난도 수그러들었다. 우선은 왕당파와 스코틀랜드 군의 침입을 막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8월 초 의회는 독립파와 대결시킬 목적으로 릴번의 석방과 3,000 파운드의 보상금 지불을 의결했다. 그러나 릴번은 상원의 책략에 쉽게 말려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크롬웰을 지지하는 편지를 보내면서 이렇게 썼다.

"내가 당신에게 손을 댈 때는 당신의 영광의 절정에 올라있을 때, 그리고 당신이 진리와 정의의 정도에서 벗어나 있을 때라는 것을, 그리고 당신이 그 올바른 길을 굳건히 그리고 공정하게 걸어갈 때, 내 심장의 마지막 피한방울까지 당신에게 바칠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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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과 빈곤」(1933), 『발터벤야민 선집5』, 최성만 옮김, 길, 169~180쪽.

 - 172쪽. 1차 대전 이후 전달할 만한 경험은 거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전략적 경험이 진지전에 의해, 경제적 경험이 인플레이션에 의해, 육체적 경험이 배고픔에 의해, 윤리적 경험이 권력자들에 의해 철저하게 허위로 판명났기 때문이다.

- 173쪽. 기술의 발달과 함께 사람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빈곤이 덮쳤다. 점성술, 크리스천 사이언스, 채식주의, 그노시스, 심령주의 등 사람들 위로 덮친, 갖가지 이념들이 이러한 빈곤의 이면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겪는 경험의 빈곤은 거대한 빈곤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 그 거대한 빈곤은 중세 걸인의 얼굴처럼 날카롭고 정확한 윤곽을 띠는 얼굴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교양(문명)의 산물 전체는 바로 그 경험을 우리와 연결시키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의 빈곤은 사적인 경험뿐 아니라 인류의 경험 전체가 빈곤해졌음을, 일종의 새로운 야만성을 뜻한다.

 - 174쪽. 우리는 그것을 새로운 긍정적인 개념의 야만성으로 부르고자 한다. 경험의 빈곤은 야만인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데로 이끈다. 새롭게 시작하기, 적은 것으로 견뎌내기.

 - 175쪽. 클레나 현대건축의 선구자 아돌프 로스와 같은 프로그램이 뚜렷한 예술가들은 각 태어난 아기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이 시대의 더러운 기저귀에 누워 있는 벌거벗은 동시대인에게 눈을 돌리기 위해, 전승되어온 장중하고 고결한 인간상, 과거의 온갖 제물들로 치장한 인간상을 박차고 나온다. [휴머니즘의 원칙을 거부하는 ‘탈인간화’ 과정으로서.]

 - 178쪽. 경험의 빈곤. 이것을 마치 사람들이 새로운 경험을 동경한다는 것처럼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 사람들은 경험에서 풀려나고 싶어하며, 그들이 그들의 빈곤을, 외적 빈곤과 결국 내적 빈곤까지도, 순수하고 분명하게 통용시킬 수 있는 환경, 그리하여 뭔가 훌륭한 것이 여기서 나오게 될 그런 환경을 동경한다. 그들은 언제나 무지한 것도,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다. 종종 우리는 정반대를 말할 수 있다. 즉 그들은 그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고 ‘문화’와 ‘인간’을 삼켜버렸고, 그리하여 그것들로 너무 배가 불러 지쳐버렸다고.


- 179쪽. 자연과 기술, 원시성과 안락함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새로운 삶.


- 180쪽. "우리는 빈곤해졌다. 우리는 종종 ‘현재적인 것’의 작은 동전을 대가로 받기 위해 인류의 유산 한 조각 한 조각을 포기했고, 때로는 가치의 백분의 일만큼이라도 전당포에 맡겨야만 했다. 경제위기가 문앞까지 왔고, 그 뒤에 그림자가, 다가올 전쟁이 있다. 움켜쥐는 것은 오늘날 소수의 권력자들의 사안이 되었고, 이들은 아마 수많은 사람들보다 더 인간적이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더 야만적일 테고, 그렇지만 좋은 방식으로 야만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새롭게, 적은 것을 가지고 꾸려나가야만 한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을 자신의 일로 만들고 그 새로운 것을 통찰과 포기 위에 구축한 사람들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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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카 3부 서문과 명제2  주석> 노트

 - 3부 서문 129쪽. 정서와 인간의 생활방식에 관한 그릇된 상식이 있다. a) 인간이 자연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그것을 깨뜨리기 때문에 마치 정서가 ‘자연 바깥’에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b) 그래서 인간의 무능력을 공통적인 자연적 힘에 두지 않고, 인간 본성에 결함이 있는 것인양 사고한다. c) 그리고 그렇게 인간 정신의 무능력을 비난하는 사람은 신(인간보다 상위의 존재)으로 여긴다. d) 사람들은 정신이 정서에 대해 절대적인 지배력을 소유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데카르트가 논증하려 했던 것이다.

- 130쪽. 자연 안에는 자연의 잘못으로 여길만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연은 항상 동일하며 자연의 힘과 활동력은 어디에서나 동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물의 본성을 인식하는 방법 또한 동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증오, 분노, 질투 등은 자연의 필연성과 덕에서 생긴 것이다. 그러한 정서들은 그것들이 인식되어야 할 특정한 원인이 있다.

 - 명제 2. 신체는 정신을 사유로 결정할 수 없으며, 정신도 신체를 운동이나 정지로 결정할 수 없다. 증명 : 정신을 사유로 결정하는 것은 사유의 양태이지 연장의 양태, 즉 신체는 아니다. 134쪽 주석 : 정신과 신체는 동일하다. 사물의 질서나 연결은 자연이 이 속성이나 저 속성 어느 것 아래에서 파악되든 하나이며, 따라서 우리 신체의 능동과 수동의 질서는 정신의 능동과 수동의 질서와 일치한다. 135쪽 그러나

- 반론0) 사람들은 신체가 정신의 명령에 의해서만 운동 및 정지한다고 말한다.

⇒ 응답0) 하지만 인간 지혜를 능가하는 많은 것이 동물에서 관찰되고, 또 몽유병자를 볼 때 신체가 정신의 지배를 받는다고 보기 힘들다.


- 반론1) 이에 대해 사람들은 인간 정신이 사고에 적합하지 않을 때(달리 말해, 정신이 온전하지 않을때) 신체가 활발하지 못함을 경험한다고 말한다.

- 반론2) 또한 말을 하거나 침묵하는 것, 그리고 그 외의 많은 것이 오직 정신의 힘에 있음을 경험한다면서, 많은 것은 정신의 결단에 의존한다고 그들은 믿는다.

- 반론3) 사람들은 건축과 같이 인간의 기술에 의해 만들어지는 사물들의 원인을 단지 물체적인 것으로만 고찰하는 자연법칙에서 이끌어낼 수 없으며, 인간 신체가 정신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서는 사원(寺院)과 같은 것을 건축할 수 없다고 말한다.


⇒ 응답1) 하지만 경험은 반대로 신체가 활발하지 못할 경우 정신이 사유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예컨대 신체가 잠들 경우, 정신도 무의식 상태에 머물지 않은가. 다음으로 정신이 어떤 사유를 할 때 신체가 어떤 대상의 표상을 만들기에 적합함에 비례해 정신도 그 대상을 고찰하기에 적합하다는 것을 누구나 경험한다. 136쪽


⇒ 응답3) 정신의 인도없이 생겼다고는 믿을 수 없는 많은 것이 자연법칙으로만 생기며, 나아가 인간 신체의 구조 자체는 인간의 기능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것을 기교상 능가한다.


⇒ 응답2) 만일 침묵하거나 말하는 것이 인간의 힘 안에 있다면, 인간사는 훨씬 용이했을 것이다. 하지만 경험은 인간에게 혀만큼 억제하기 힘든 것도 없으며 자신의 욕구(appetitus)에 대한 제어만큼 힘든 일도 없음을 가르쳐준다. 하지만 그들은 미치광이, 수다장이, 어린아이, 술주정쟁이 같은 사람들이 그들의 욕구를 억제하지 못하고 지껄이면서도 정신의 자유로운 결단에 의해 말한다고 믿는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의식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결정하는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자유롭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또한 경험은 정신의 결단이란 사실 욕구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정신의 결단은 신체상황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137쪽.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정신을 결단케하는 것과 신체나 욕구를 결정하는 것은 본성상 동시적이며, 또는 오히려 하나로 동일한 것이고, 이 동일한 것이 사유의 속성 아래에서 고찰 및 설명될 때 우리는 이것을 결단(decretum)이라고 하고, 연장의 속성 아래서 고찰되고 운동법칙에서 도출될 때 우리는 그것을 결정(determinationem)이라고 한다는 점이다. 우리들이 무엇인지 지껄이는 꿈을 꿀 때, 우리는 정신의 자유로운 결단에 의해 지껄인다고 믿지만, 사실 그것은 신체의 자발적인 운동에서 생긴 것이다. 우리가 자유로운 것이라 믿는 정신의 결단은 표상이나 상기 자체와 구별될 수 없으며, 그것은 관념이 관념인 한 필연적으로 포함하는 긍정(affirmationem)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정신의 결단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의 관념과 동일한 필연성을 가지고 정신 안에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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