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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

1부 3장 4절 떼 지성


- 분산된 네트워크는 떼지어 적을 공격하고 다시 주위환경으로 사라지는 듯 보인다. 네트워크 외부에서 보면, 그 공격은 자생성과 무질서로만 움직이는 중심없는 비조직처럼, 그래서 미지의, 예상할 수 없는 공격자인 새나 곤충 때처럼 보인다. 하지만 네트워크 내부에서 보면, 그것이 실제론 조직적, 합리적, 창의적임을 알 수 있다. 네트워크는 떼지성을 지닌다.


- 최근의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이렇게 중앙집중적 통제나 보편적 모델없이도 문제를 해결하는 집합적이고 분산된 기술에 떼지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전의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지능이 개체의 지력(mind)에 기초한다고 가정하는 반면, 그들은 지능이 근본적으로 사회적이라고 주장하면서, 개미, 벌, 흰개미같은 군집생물이 정교한 구조물을 세우는 행태와 유비시킨다. 개체로서의 흰개미들 중 어느 것도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흰개미 떼는 중앙 통제 없이 소통에 기초한 지능체계를 형성한다.


- 그들의 떼 모델은 떼의 개별 행위자들이나 입자들이 실제로 동일하며 창의적이지 않다고 가정하지만, 새로운 네트워크 정치조직에서 출현하는 떼들은 상이한 창의적 행위자들의 다중으로 구성된다. 그들은 인종, 성별, 섹슈얼리티 등등에서 차이를 유지한다. 그래서 우리가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은, 갖가지 다양체의 소통과 협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집단지성이다.


- 이것은 랭보가 파리꼬뮌에 바치는 자신의 찬가에서 혁명적 꼬뮈나르들을 왜 곤충들로 상상했는지를 이해하게 해준다. 물론 적의 군대에도 이 곤충떼의 이미지가 부여되기도 했다. 에밀졸라가 대패배에서 프랑스 진지로 몰려드는 프러시아인들을 ‘검은 떼’로 묘사할 때처럼 말이다. 이런 은유는 불가피한 패배를 강조하는 한편 (지성이 없다는 식의) 적의 열등성을 그려내는 것이다. 랭보가 꼬뮈나르들이 개미들처럼 도시를 돌아다니고, 그들의 바리케이트가 개미탑처럼 활기로 북적거린다고 할 때, 그는 몸 속의 감각들을 다시 각성시키고 다시 발명하는 것은 살의 윙윙거림과 붕붕거림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랭보와 꼬뮈나르들이 보여준 것은 결국 새로운 종류의 지성이며, 집단지성이자 떼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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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2장 역반란들

 

37.1 문제의식 : 2장은 예외상태와 전지구적 내전에 의해 창출된 “전쟁기계”의 내적 모순을 분석할 것이다. 역반란들로서의 이 새로운 전쟁 모델은 두 가지 모순으로 특징지어진다. (a) 전통적인 전쟁방법에서 벗어남으로써 유래한 모순. (b) 삶권력과 전쟁이 불가피하게 대면해야 하는 사회적 노동의 새로운 형태들과 사회의 새로운 조건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모순. 이 모순들은 어떠한 형태의 저항과 해방이 가능한지를 인식하는, 어떻게 전지구적 전쟁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발견하는 발판을 제공할 것이다.

 

1절 새로운 전쟁의 탄생

37.2 새로운 전쟁에 대한 낡은 인식 : 탈근대전쟁이 전근대적 전쟁과 닮아 있기는 하다. 그래서 전쟁이 국민국가들 간의 갈등으로 제한되었던 근대는 인류가 도덕적․종교적 용어로 덧코드화되는 오늘날의 불명확한 전쟁상태로 되던져지기 이전 몇 세기동안의 짧은 유예기간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처럼 낡은 요소들[도덕, 종교]이 재출현한 것이라는 인식은 새로운 전쟁을 파악하는 적절한 시도는 아니다.

 

37.3 전쟁의 시기구분 : 1차대전(1914-18)과 2차대전(1939-45)에 이어 곧바로 새로운 종류의 냉전에 돌입했고, 냉전의 붕괴(1989-91)는 4차대전으로 간주될만한 현재의 제국적 내전상태에 자리를 내주었다. 이러한 시기구분은 이전의 전지구적 갈등들과의 차이들 및 연속성을 인식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유용한 출발점이다. 냉전은 전쟁이 정상상태가 되었음을 확립시켰으며, 설혹 전쟁의 포화가 멈추었어도 그것이 전쟁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그 형태만 바꾼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 전쟁의 본성변화 : (1) 1차대전은 유럽의 국민국가들 간의 갈등이었다. 그것은 유럽 국민국가들의 제국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인 구조들의 전지구적 확장에 기인한 것이었다. (2) 2차대전은 한동안 아시아와 유럽에 집중되었지만 소련과 미국의 개입으로 해결되었고, 이 두 열강은 이후 새로운 전지구적 갈등의 진영을 결정했다. (3) 냉전은 대부분의 국민국가들이 양 진영 중 한쪽에 줄을 서는 전지구적 양자택일을 공고히 했다. (4) 제국적 전쟁상태에서는 주권적 국민국가들이 더 이상 갈등의 진영을 일차적으로 정하지 못한다. 오늘날의 전쟁터에는 새로운 배우들이 있으며, 이들의 정체를 밝히는 보다 분명히 밝히는 것이 이러한 계보학을 구축하는 핵심적 과제 중 하나이다.

 

38.1 국제관계에서의 변화 : 현재의 전쟁상태의 개시일을 냉전의 붕괴일로 보는 것보다는 1972년 5월 26일, 즉 미소 간의 탄도요격미사일협정(ABMT)일로 보는 것이 더 시사적이다. 이때가 핵경쟁으로 치닫던 근대적 의미의 전쟁(즉 고강도의 갈등과 파괴를 수반하는 보편화된 전쟁)이 흔들리기 시작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 뒤로는 대량학살이 더 이상 병법의 일부가 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행동이 반복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전쟁은 응집된 거대한 위협에 맞선 방어에 방향을 맞추기 보다는 확산되는 작은 위협들에 초점을 맞추고, 적의 파괴보다는 적의 변형이나 생산으로 기울었다. 전쟁은 억제되었다. 거대 열강들은 전면적인 대규모 전투보다는 고강도 경찰행동들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물론 고강도의 경찰행동은 종종 저강도의 전쟁과 구별되지 않는다. 이 갈등들이 때로는 전쟁으로 변형될 때에도, 그것들은 20세기의 총동원 전쟁처럼 확대되지 않았다. 요컨대 1972년 5월 26일에 전쟁은 전지구적 사회질서의 구축 및 재생산을 겨냥한 삶권력의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다.

 

39.1 생산에서의 변형 : 1970년대 초에 일어난 전쟁의 형식과 목적의 이동은 전지구적 경제에서의 거대한 변형(1971년 달러본위제와 1973년 1차 석유위기)의 시기와 일치했다. 이때는 화폐 및 경제위기의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복지국가가 파괴되기 시작하고, 경제적 생산의 헤게모니가 공장에서 사회적이고 비물질적인 분야들로 이동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39.2 전쟁과 무기의 삶전체로의 확산 : 이러한 탈근대적인 삶권력의 전쟁은 생산에서의 이동과 아주 분명하게 연결된다. 왜냐하면 전쟁은 항상 생산과 결합되었고, 아마도 점점 더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근대의 전쟁과 근대의 산업이 손에 손잡고 발전했듯이, 탈근대 전쟁은 대규모 산업의 기술과 형태를 채택 및 확대하고, 그것들을 새로운 사회적, 비물질적 생산의 혁신들에 덧붙인다. 오늘날 군사적 통제와 조직화는 주로 소통 및 정보 기술을 통해 행사된다. 게다가 특히 흥미로운 것(그리고 위험한 것)은 새로운 핵기술과 화학기술의 발전에 더한 생물학적 기술들과 산업들의 군사적 목적을 위한 발전이다. 전통적인 산업기술들과 나란히, 소통 및 정보통제 기술이 더해졌을 때, 그 결합된 힘은 전쟁에 복무하는 거대한 병기고를 구성한다. 따라서 탈근대적 전쟁은 이동성과 유연성에 기초를 두고, 비물질노동을 통합하는 포스트포드주의적 생산의 특징을 갖는다. 전통적이고 근대적인 [전쟁과 무기의] 비확산의 노력은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새로운 생산적 기술들이 이른바 “확산하는 확산”의 기초를 제공했다.

 

40.1 군산복합체 아니죠~. 군생복합체 : 전쟁과 생산의 관계를 제기할 때, 그것을 종종 “군-산 복합체”로 부르는 단순화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한다. 이 용어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제국주의적 국면에서 주요한 산업기업과 군대-경찰 사이의 이해관계의 합류점에 이름을 붙이려고 만들어졌다. ‘군산복합체’라는 생각은 1960년대에 전쟁산업이 인류 운명 전반에 대해 행사한 통제력을 표현하는 신화적 상징물이 되기 시작한다. 달리 말해, 그것은 저항 및 해방운동들에 대응하는 산업, 전쟁, 제도들 간의 복잡한 관계들의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역사의 주체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인민주의적 용어로 ‘군산복합체’에 무비판적으로 준거하는 것은 역사적 과잉단순화의 형태가 되었는데, 이는 전쟁과 그것의 원인, 그것의 사회적 규정들에 대한 정치적 이론적 분석들에서, 계급갈등 및 반란 그리고 오늘날의 다중의 운동들에 대한 실재적인 고려를 제거하는데 복무한다. 이 운동들은 그것들이 생생하게 표현되는 전 영역에서 주권권력이 대응하고 통제해야만 하는 운동들이다. 적을 파괴하려고만 하는 전쟁은 오늘날 새로운 형태의 명령을 뒷받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전쟁은 삶을 파괴해야 할 뿐만 아니라 창조해야 한다. 이 점에서 “군산복합체”보다는 “군-생(vital) 복합체”에 대해 말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삶권력과 전쟁이 실재에서, 그리고 우리의 분석의 모든 수준에서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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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1976년 1월 28일 강의

85-1. 문제의식(최종주장) : 인종주의담론은 인종전쟁담론의 한 국면이며, 기본적으로는 보수주의적이거나 식민지배의 목적에 사용되는 사회-생물학 이론이다. 인종주의 담론은 반역사로서의 인종투쟁이나 인종전쟁의 담론의 변형이지만 그것과 엄밀히 구분되어야 한다.


86-1. 권력정당화로서의 역사담론 :
역사담론은 오랫동안 권력을 정당화하고 그것을 빛나게 하는 이중의 역할을 하는 권력의 의식(儀式)이었다. 첫째, 법의 멍에. 왕과 권력자의 승리를 말하면서 법의 영속성에 따라 권력과 사람을 법률에 연결시키고, 권력의 기능 안에 사람을 배치시키는 것. 둘째, 영광의 광채. 권력자의 영광과 위업을 찬양하여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것. 각종 의례와 전설로서의 역사는 권력을 조작․강화하는 장치이다.

86-2. 중세 역사담론(설화)의 3가지 계보학적 기능 : (1) 왕권의 유구함, 영웅(선조)의 위엄을 말하기. (2) (군주적) 권리의 유구함을 말하기. (3) 왕․군주 등의 이름을 과대평가하기.

87-1. 중세 역사기록(연대기)의 3가지 기억의 기능 : (1) 왕의 행위를 의미있는 것으로 기록하기. (2) 왕의 결정을 신민들과 후손들에게 의무로서 기입하기. (3) 실례의 유포.

88-1. 주권을 강화시키는 역사의 기능 : 로마나 중세사회(인도-유러피언 사회)의 역사형태들에는 앞서 얘기한 두 가지 기능, 법(의무, 계약)에 의한 속박과, 마법적 기능에 의한 현혹이 동시에 나타났다. 즉 권력담론으로서의 역사는 사람들을 굴복시킬 때 사용하는 도구인 의무의 담론이자,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공포로 얼어붙게 하는 눈부신 섬광의 담론이다. 이것은 당시의 권력의 표상이자 권력을 재활성화시키는 과정 그 자체였다.

 

88-2. 새로운 역사담론의 출현 : 그러나 16-17c초에 주권․인종의 담론과는 다른, 인종들 간의 대결과 투쟁의 담론, 반로마적, 반역사적 담론이 나타났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반역사적이다. 이때부터 국가와 군주, 민중과 왕 간의 동일성이 사라졌으며, 그로써 주권은 인종의 결속이 아니라 예속의 기능을 갖기 시작했다. 예컨대 프랑크족과 클로비스 1세에겐 승리였던 역사가 갈로 로맹(골족)인들에게는 패배와 노예의 역사였다. 승리와 예속의 현실법칙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러한 반역사는 군주 통치의 통일성을 해체할 뿐만 아니라 윤영광의 지속성까지도 단절시켰다. 권력의 마법적 빛은 더 이상 사회를 하나로 비춰주지 않으며, 양지와 응지를 나누는 빛으로 변모했다. 인종들의 투쟁으로부터 생겨난 반역사는 이 응달에 관한 담론이다. 이 담론은 잃어버린 영광과 옛권리를 회복시켜줄 약속된 땅을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이 견뎌내야만 했던 굴종과 패배를 열거한다.

 

92-1. 담론 전환의 내용 : 로마의 정치-전설적 역사에서 유대인들의 신화-종교적 역사로, 즉 권력의 연속된 역사를 기록한 연대기의 형식에서 히브리 성서적 형식으로. 이러한 변환 속에서, 성서는 중세 중반기 이후부터 왕권 및 교회의 전횡에 맞서 표출된 반대이론으로, 비판담론으로 기능했다. 성서는 빈곤과 부활의 무기였고, 법과 빛에 대항하는 여론을 일으키는 말이었으며, 로마사(리비우스)에 대항한 반역사였다.

92-2. 기억의 의미전환 : 이 새로운 담론 속에서 기억의 기능 역시 의미가 바뀐다. 새 역사는 이제까지 숨겨져있던 것, 단순히 부주의로 숨겨진 것이 아니라 고의적으로 은폐된 어떤 것을 발굴한다. 결국 새 역사가 보여주려는 것은 권력자와 왕, 그리고 법칙(법?)이 실은 전투장의 정의롭지 못한 우연 속에서 탄생했음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잉글랜드의 정복자 기욤은 정복자로 불리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가 휘두른 전횡이 쟁취된 권리라는 것을 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역사의 역할은 법이 기만이라는 것, 권력은 환상을 심어주며 역사학자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게 된다.

93-1. 고대의 종말 : 로마적 역사담론은 사회를 평정하고 권력을 정당화하고, 사회체를 구성하는 질서(혹은 군주․귀족․평민 계급)를 기초한다. 반면 성서적 역사담론은 사회를 분열시키고, 법에 전쟁을 선포하기 위해서만 법을 말한다. 이 반역사는 어두운 예속과 추락의 역사, 예언과 약속의 역사, 재발견하고 판독해야할 비밀스런 앎의 역사, 그리고 권리와 전쟁을 동시에 선언한다. 자연적인 사물의 질서로의 강력한 회귀를 주장하는 앎과 호소의 담론이며, 더 이상 인도-유러피언 사회의 역사담론처럼 삼원적인 조직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원적 분할 및 지각과 관계가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 종족투쟁의 역사에 대한 담론이 생겨났을 때 고대(고대에서 중세 말까지의 지속성의 의식-프리아모스 왕가의 계통을 잇는다는 의식)는 끝났다. 그 뒤로 유럽의 진짜 기원(예컨대 프랑크족의 침입, 노르만족의 침입 등 정복으로부터의 기원)을 형성할 사건과 그 속에서의 역사적 주인공들(프랑크족-골족-켈트족, 북부인-남부인, 지배자와 피지배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97-2. 근대사회로의 진입 : 이러한 담론전환 속에서 다음 4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담론의 확산 : 종족투쟁의 담론이 반드시 피억압자나 민중의 담론인 것만은 아니다. 처음에는 이 담론이 중세 후기의 민중운동 속에서 신화나 종말론적 주제로 모습을 드러냈지만(17c), 곧 역사적 학문이나 민중문학, 우주-생물학적 사변의 형식으로 확산되었다(19c초). 그리고 이후 식민화된 저급인종의 자격박탈이론에 기여하기에 이른다(19c말-20c초). (2) 균열된 종족 : 종족간의 전쟁이라고 해서 그때의 ‘종족’이 어떤 안정된 생물학적 의미에 고정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매우 넓은, 그러나 상대적으로 고정된 역사적․정치적 균열을 가리킨다. 왜냐면 서로 다른 언어와 종교를 가진 두 종족이 전쟁과 폭력을 통해 수립된 유대관계로서 정치적 공동체를 이룬 것이기 때문이다. (3) 앎의 폭발 : 로마적 역사와 성서적 역사는 공식적 담론과 촌스런 담론(즉 앎을 생산할 능력이 없는 순진한 담론)의 차이로 봐서는 안 된다. 후자는 전자가 이룬 것만큼의 앎을 생산했기 때문이다. 17c에 역사적 인식형성이 폭발했던 것은 두 역사적 실천이 교차했을 때였다. 또한 19c에도 역사적 앎의 풍요기가 찾아왔었다. 민중의 역사, 골족과 프랑크족의 역사, 농민과 제3신분의 역사 등의 담론이 체제의 정통적 역사와 충돌하면서 앎의 영역과 내용이 끊임없이 부딪치고 새롭게 생산되었다. (4) 혁명적 담론 : 이 모든 충돌에도 불구하고 혁명적 담론이 자리잡은 것은 분명 성서적 역사, 투쟁과 요구로서의 역사, 은폐의 폭로로서의 역사, 전쟁의 도구이자 전술적 요소로서의 앎의 사용의 역사, 권력행사의 장에서 자리옮김을 시도한 역사의 쪽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종족간의 (대결의) 역사와 혁명적 기획의 역사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우리의 계급투쟁이론, 그것을 우리는 종족투쟁을 말하는 프랑스 역사가들에게서 발견했다는 것을 자네는 잘 알고 있겠지.”(맑스, ‘1882년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 또한 이것은 주권과 신화의 역사에서 벗어났음을, 즉 근대사회로 진입했음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101-1. 반혁명적 반역사 : 19c초․중반에 이처럼 종족투쟁담론이 혁명담론으로 해석된 순간부터, 즉 종족투쟁 개념이 계급투쟁 개념으로 전환된 순간부터 반역사를 계급투쟁이 아닌 종족투쟁(의학적, 생물학적 의미)의 용어로 새롭게 체계화하려는 시도는 매우 적절한 것(때를 잘 만난 것)이었다. 이렇게 혁명적 형태의 반역사가 형성된 순간, 또 다른 반역사가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혁명적 담론의 역사적 차원을 의학-생물학적 전망(그리고 인종차별주의) 안에서 말살하게 된다는 점에서의 반역사이다. 이제 역사적 전쟁이라는 주제는 생존경쟁이라는 후기 진화론적․생물학적 주제로 전환된다.(전쟁개념의 전투의 종의 분화․적자생존으로의, 생물학적 개념의 전투로의 전환) 즉 두 종족이 나란히 공생하는 이원적 사회의 주제가 생물학적으로 단일한 일원적 사회의 주제로 바뀌게 된 것이다. 정의롭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던 국가가 종족의 순수성과 우월성, 통합을 보장하는 도구로서의 국가로 전환되고, 그래서 종족의 순수성이라는 이념이 인종간 투쟁이라는 이념으로 대치된다.

102-1. 인종주의 및 의학과 주권 : 이 점에서 인종주의는 우연히 서구의 반혁명정책과 연결된 것이 아니며, 또한 단순히 특정 시기에, 일종의 반혁명적 기획 안에 나타나게 될 부가적 이념의 구조물이 아니다. 종족간 투쟁의 담론이 혁명담론으로 변화했을 때, 원래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으나 전혀 다른 의미로 전환된 인종주의는 이제 혁명적 예언과 기획․사상이 되었다. 이제 주권의 생명력과 섬광은 마술-사법적 儀式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의학-규격화의 기술에 의해 확보된다. 법률학에서 생물학으로, 복수의 종족에서 단수의 종족으로, 해방기획에서 순수의 기획으로 관심을 바꿔놓음으로써 국가주권은 종족투쟁의 담론을 다시 취해 그것을 자기 고유의 전략으로 삼은 것이다.

103-1. 나치와 소비에트의 변용 : 혁명담론의 인종주의로의 전환은 20c에 다시 두 번의 변화를 겪었다. 첫째, 19c말의 중앙집권적․생물학적 인종주의. 그리고 근본적으로 수정된 것은 아닌 둘째, 20c의 특정 전략으로의 변형. 그리고 이러한 20c의 변형에는 두 가지 변용형태가 있다. (1) 나치적 변용. 나치는 19c말에 확립된 국가인종주의의 명제를 채택했다. 이 명제는 약간 퇴행적인 방식으로 채택 및 전환되어 과거에 종족간 투쟁의 주제가 나타났던 바로 그 예언적 담론에 이식된 채 기능했다. 그래서 나치즘은 이데올로기적․신화적 풍경 안에서 국가인종주의를 작동시키기 위해 중세적 민중신화를 다시 사용했으며, 또한 한 사람의 영웅의 회귀, 조상들의 옛 전쟁의 계승, 묵시록적인 최후의 새로운 제국의 도래 등의 주제를 담고 있었다. (2) 소비에트식 변용. 이것은 떠들썩한 연극적 전설이 전혀 없는 음밀하면서 희미한 ‘과학주의’적인 변용이다. 이것은 사회적 투쟁이라는 혁명담론을 다시 가져와 경찰국가적 관리와 연결시켰다. 조용하게 사회의 질서를 잡고 사회의 건강을 지켜날 경찰국가적 관리의 적은 새로운 계급의 적, 즉 병자․일탈자․광인이다. 그 결과 과거 계급의 적에 대항하던 무기(전쟁, 변증법, 신념이라는 무기)는 이제 종족의 적으로서의 계급의 적을 말살하는 의학적 경찰이 되었다. 혁명담론은 국가의 행정적 산문으로 변모했다.

105-1. 반혁명이 가져온 풍경. 로마의 재정복 : 페트라르카는 중세의 끝트머리(1373년)에서 “역사 안에 로마 칭송이 아닌 것이 어디있는가?”라고 물었었다. 이것은 이제 “역사 안에 혁명의 공포 또는 호소 아닌 것이 무엇이 있는가?”라고 바뀌어 물어져야 하며, 여기에 “만일 새롭게 로마가 혁명을 정복한다면?”이라고 되물어져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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